27개국 이주민 136명이 들려주는 1364편의 설화 구비문학 연구자 16명, ‘다문화 구비문학대계’ 발간
신데렐라, 백설공주, 라푼젤…. 서구 유럽에서 오래 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설화(說話)는 동화책은 물론 디즈니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돼 전 세계 어린이들의 가슴속 깊은 곳에 뿌리내린 지 오래다. 30년 넘게 구비문학을 연구해온 신동흔 건국대 국어국문학과 교수(59)는 서구 유럽의 설화보다 우리 주변에서 살아가는 이주민들이 품고 있는 옛 이야기가 궁금했다. 경기 양평에 위치한 그의 집 주변에는 중국 출신 이주민이 산다. 한 동네에서 베트남,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출신 이주여성을 손쉽게 만날 수 있다. 어쩌면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서 우리가 몰랐던 새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서구 유럽의 설화들은 익히 알려져 있는데, 정작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동남아시아 출신 이주민들의 이야기에는 귀 기울이지 않았어요. 어쩌면 진정 새로운 이야기는 그들로부터 나오지 않을까요.”
설화는 서로 다른 문화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 통로가 돼주기도 한다. 필리핀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첫 번째 원숭이 루파네스’가 대표적이다. 동물의 가죽을 벗겨 질기고 강한 옷을 만들어 팔던 상인에게 분노한 신이 그를 털가죽에 뒤덮인 원숭이로 만들었다는 이야기 속에는 동물의 생명을 중시하는 필리핀의 문화가 깃들어 있다. 오 교수는 “저개발국가라고 여겨졌던 동남아시아 국가의 설화에는 자연과 공존하고 타인을 포용하는 문화가 뿌리내리고 있다. 3년간의 연구를 통해 오히려 내 안의 편견을 돌아보게 됐다”고 웃었다.
김 교수는 3년간 엮어낸 ‘다문화 구비문학대계’를 바탕으로 대학에서 학생들과 함께 동화를 제작하는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주민들이 들려준 설화가 다문화사회에서 살아갈 우리 아이들에게 다름을 받아들일 양분이 되어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책에 담긴 1364편의 이야기는 이미 우리사회 구성원이 된 이주민들이 우리말로 풀어낸 우리의 문화자원입니다. 앞으로 이들의 이야기가 우리 사회를 더욱 다채롭게 만들어줄 거라고 믿어요.” (신 교수)
이소연기자 always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