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후로 가장 주목을 받은 직업은 IT업계의 개발자다. 팬데믹 이후로 비대면 서비스가 빠른 속도로 성장하면서, 디지털 서비스를 만들고 유지하는 개발자를 구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이에 대형 IT기업들은 억대 연봉과 스톡옵션 등의 당근을 흔들며 개발자 유치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IT기업만의 문제는 아니다. 기존 산업에서도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을 활용하면서 디지털전환은 업종을 가리지 않고 대부분의 기업이 생존을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로 떠오르게 됐다.
한국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는 국내에서의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주요 정보기술(IT) 분야의 2022년 인력 부족 규모를 1만 4514명으로 추산했다. 개발자 유치를 위해 출혈을 감수할 수 있는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으로 가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중소개발사는 신규 채용은커녕 기존 개발자가 빠져나가는 인재 유출을 막는 것도 급급한 게 현실이다.
IT업계 관계자들이 개발자 수요의 가파른 증가세가 계속 유지될 것으로 전망함에 따라, 코딩 부트캠프를 찾는 사람도 늘고 있다. 코딩 부트캠프는 3~6개월 과정의 코딩 집중 교육프로그램을 말한다. IT개발자 공급을 충당하기 위해서, 취업준비생 혹은 IT업계와 무관한 직장인 등의 비숙련자를 실전에 바로 투입할 수 있도록 빠르게 교육한다.
출처=코드스테이츠
IT 직군 교육 스타트업 코드스테이츠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코드스테이츠의 부트캠프 지원자는 2만 4571명으로 집계됐다. 전년 대비(6273명) 약 4배 증가한 것이다. 비전공자의 IT커리어 전환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2021년 기준 코드스테이츠의 SW 엔지니어링, 블록체인, 인공지능 등 개발 관련 부트캠프 수강생 중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지 않은 참여자의 비율은 75%에 달했다.
다만, IT업계에선 개발자 품귀현상의 원인은 양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질적인 미스매치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서 미스매치란 구직자와 기업 간의 불일치를 뜻하는데, 기업이 필요한 건 충분한 역량을 갖춘 우수한 개발자라는 뜻이다. 아무리 개발자가 많아도 현장의 요구를 제대로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이가 적다면 큰 의미가 없다. 부트캠프를 졸업한 신규개발자들은 IT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역량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존에 해왔던 업무와 무관한 개발을 단기간 배우고서 능력 있는 개발자가 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원격 근무’의 시대.. 물 흐르듯 자연스레 움직이는 인적 자본
개발자 채용전문 플랫폼 ‘슈퍼코더’의 윤창민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문제의 본질은 중고급 개발 역량을 갖춘 개발자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는 (개발 역량 훈련에) 투자하는 절대적인 시간의 양이 늘어야 해결할 수 있다”. 슈퍼코더가 국내 기업을 해외 개발자와 연결하는 이유도 이와 맞닿아 있다. 테크 기반 기업에선 실제로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수 있는 인력이 필요하고, 이 수요는 앞으로 계속 증가할 것이다. 전문가들은 질적으로 충분한 역량을 갖춘 개발자의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으려면 아직 국내에선 5~6년의 남짓 시간이 필요하다고 예측하는데, 지금 당장의 필요를 해결하려면 어디선가 개발자를 수급해오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문제는 휴먼 캐피털(인적자본)은 다른 자본처럼 국경을 쉽게 넘지 못한다는 점이다. 국내 투자자는 스마트폰을 통해 증권거래소에서 미국 주식에 쉽게 투자를 할 수 있지만, 국내 개발자가 해외 기업에서 일을 하려면 우선 해당 국가로의 물리적인 이동부터 필요하다. 외국인 근로자는 취업 비자도 발급받아야 한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확장되는 원격 근무로 인해 휴먼 캐피털의 물리적인 이동이 불필요해지게 되면서, 이제 베트남 개발자가 한국 기업에서 원격 근무 형태로 일하는 것도 가능하게 됐다.
슈퍼코더가 연결하는 개발자는 흔히 말하는 ‘중고급 개발 역량’을 갖춘 인재다. 하지만, 그는 “역량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것과 개별적인 현장에서 바라는 중고급 역량이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중소규모의 스타트업이 개발자에게 요구하는 것은 아키텍처 설계보단 실제 코딩 실력이다. IT업계 대기업에서 중고급 역량으로 여기는 ’아키텍처’ 설계 능력은 스타트업이 당장 필요로 하는 부분이라고 보긴 어렵다. 스타트업 인재는 솔루션의 큰 그림과 전략을 짜는 것보다 실제로 고객과 만나서 솔루션을 설명하고, 관계를 쌓는 게 더 중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개발자란?.. ”문제를 구조화해서 스스로 답을 만드는 인재”
개발자 이력서와 슈퍼코더의 평가가 첨부된 추가 이력서. 고객은 이를 함께 확인할 수 있다, 출처=슈퍼코더
슈퍼코더는 역량을 객관화하기 위해 개발자의 능력을 지표로 측정하고 이를 고객사에게 제시한다. 우선, 슈퍼코더는 기업과 연결하기 전 개발자의 역량을 꼼꼼하게 평가한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씩 고객사에게 개발자에 대한 피드백을 듣고 있다. 채용 연결 외에도 개발자의 퍼포먼스를 주기적으로 점검하면서, 특정 유형의 스타트업과 친화성이 좋은 개발자를 분류하기 위해서다. IT 기업들의 개별적인 수요를 하나로 뭉뚱그리면서, 실제 기업의 요구와 관련 없는 개발자들을 연결하는 일을 지양하려는 것이다. 고객사는 지원자의 이력서와 함께 테크니컬 스킬, 커뮤니케이션 등에 대한 평가표를 참고할 수 있다.
슈퍼코더는 개발자 역량을 평가하기 위해서 세 가지 단계를 거친다. 첫째, 이력서 스크리닝과 코딩 테스트다. 슈퍼코더가 직접 개발한 코딩 테스트에서 일정 점수를 획득하고, 이력서상 적절한 경력을 갖췄다면 둘째로, 전화 인터뷰를 본다. 기본적인 영어 능력과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확인한다. 마지막으로, 전화 인터뷰를 통과하면 슈퍼코더 CTO와 라이브 기술 면접을 진행한다. 최종 합격률이 5%일 정도로 채용의 난도도 높은 편에 속한다.
전체 채용 과정, 출처=슈퍼코더
코딩 테스트를 진행하는데도 CTO와 기술면접을 하는 과정은 왜 필요한 걸까? 윤 대표는 “코딩 테스트로는 지원자의 역량을 100% 확인할 수 없다. 100명 중 80명을 선별하기 위한 용도”라고 설명했다. 원격으로 진행되는 코딩 테스트는 구글 검색 등을 통해 코딩 내용을 참고하거나 대리시험 등의 커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학교 시험과 마찬가지로,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았다고 해서 그 분야의 우수한 전문가라고 보증할 수도 없다.
슈퍼코더는 좋은 개발자를 “그 순간에 어떤 문제를 던졌을 때 이를 구조화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인재”로 정의한다. 때문에, CTO와의 면접에선 지원자에게 “모바일 앱을 운영하고 있는데 트래픽이 폭증해서 서버가 다운됐다. 당신은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팀에 백엔드 엔지니어 2명이 있고, 지금 특정 피처(기능)를 개발해야 하는데 역할 분담을 어떻게 해서 개발을 하는 게 좋을지?”처럼 질문자가 자유롭게 답하는 개방형 질문이 던져진다. 이를 통해 개발 지식을 정말로 이해했는지, 개발 툴을 이용해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실제로 있는지를 본다.
현재 슈퍼코더 인력풀의 개발자는 대부분 개발도상국 출신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들이 국내 개발자와 유사한 역량을 갖춘 경우에도 노동의 가치가 상당히 저평가돼 있다고 보고 있다. 월 4천 불의 임금으로도 세계적인 IT기업에서 근무를 할 수 있는 최고급 역량을 갖춘 개발자를 고용할 수도 있다.
개발도상국의 개발자 인건비는 상당히 저평가돼 있는 상황이다, 출처=슈퍼코더
실제 고객사의 반응을 묻자 윤 대표는 “고객사들은 슈퍼코더에서 연결한 개발자와 일을 하면서 이들을 훌륭한 역량을 갖추고 있음을 차츰 인지하게 된다. 모두가 원팀이라는 분위기로 일하는 곳도 많다”고 했다. 그는 “고객사들이 구축하는 문화를 보면 인종과 국적을 넘어서 상호 존중을 기반으로 서로를 대하는 게 보인다. 이렇게 팀원으로 융화되는 모습을 보면 글로벌 사회가 도래했음을 느끼게 된다"고 했다.
개발자 문화는 민첩하고 정확하게, ‘애자일(Agile)’해야 한다
물론, 슈퍼코더를 통해 개발자를 채용하고, 이를 통해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기업도 많다. 슈퍼코더의 A 고객사 대표는 “슈퍼코더를 통해서 개발자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조직 문화를 바꾸는 것에 도움을 받았다”고 전했다. 고객사가 꼽는 긍정적인 변화는 해외 개발자와 함께 일하면서 ‘애자일(Agile) 방식’을 조직 문화에 접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해외의 개발 문화인 애자일은 계획을 짧게 세우고, 시제품을 만드는 사이클을 반복하면서 고객 요구의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하는 방법론이다. 앱을 개발할 때 필요한 기능과 개발 기간을 모두 계획하고, 이에 따르는 전통적인 개발 방식은 워터폴(Waterfall)이라고 한다. 워터폴은 초기에 설정된 계획에 집중하기 때문에 개발 과정에서 생긴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한다. 6개월 뒤 고객의 니즈가 완전히 바뀐다면 워터폴 방식의 결과물은 무용지물이 된다. 국내에선 여전히 워터폴 방식이 보편적이다.
애자일 방식은 전체 6개월의 개발 기간을 설정하고, 이 기간을 2주 단위로 짧게 쪼갠다. 우선, 핵심기능을 만든 뒤 피드백을 받고, 이후로 다시 우선순위를 정해 빠르게 업무를 조율한다. 덕분에 고객의 요청사항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인터넷에 연재하는 시리즈 기사나 연재 소설이 중간중간 독자가 제기하는 문제 사항이나 요구 사항을 추후 결과물에 반영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슈퍼코더는 초기 2주~4주간 고객사에 개발 프로세스에 직접 참여하면서 개발 문화를 고도화하고, 새로운 개발 프로세스를 수립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국내 개발 문화를 고도화하는데도 직접적으로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윤 대표는 “팀원들이 영어를 잘하면 좋지만, 불가능하면 문서를 기반으로 업무를 할 수도 있다. 최근엔 번역 기술이 많이 발전해서 번역의 퀄리티도 높아졌다. 그리고, 국내에선 영어 사용에 심리적인 장벽이 클 뿐, (해외 개발자와 함께 일을 하면서) 영어가 안 되는 사람은 지금까지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까지는 사람이 직접 개발자를 채용하는 과정에 개입하면서 사업을 키워왔다. 처음부터 모든 걸 자동화한다면 ‘무엇이 자동화가 가장 필요한지’를 놓칠 수 있으므로, 직접 일을 진행하면서 비즈니스를 분석한 것”이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인도와 베트남에서 1400명의 지원자가 지원을 했는데, 여기서 좋은 역량을 갖춘 사람을 분별하는 게 필요하다. AI를 통해서 서류 평가를 자동으로 필터링하고, 면접자를 면접관과 매칭하는 것도 알고리즘으로 대체할 계획이다. 면접관이 지원자에게 좋은 질문을 하는 것도 중요한 이슈이기 때문에, AI가 음성 데이터를 듣고 질문을 추천하는 엔진을 개발하려고 하고 있다”고 목표를 밝혔다.
동아닷컴 IT전문 정연호 기자 (hoh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