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근형 정책사회부 기자
“흡연자였어?”
최근에 알게 됐다. 1년 넘게 함께 일한 팀 동료 A가 흡연자라는 사실 말이다. 팀원 5명 중 홀로 흡연자라 되도록 조용히 피웠다고 했다. 외부에선 연초도 즐기지만 회사 주변에선 냄새가 거의 없는 ‘궐련형 전자담배’만 이용했다. ‘꼰대 애연가’가 되지 않으려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에티켓이란다. A는 “전자담배의 담뱃갑엔 니코틴 함유량이 표시되지 않아 ‘죄책감’이 덜하다. 그래서 흡연량이 늘었다”고 전했다.
A의 말을 듣고 보니 문득 궁금해졌다. 왜 전자담배에는 유해물질이 얼마나 들어 있는지 표시되지 않을까. 그 이유는 생각보다 더욱 복잡했다. 담배법의 한계, 정부의 역량 부족 등 여러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었다.
이는 전 세계 116개국이 담배의 성분 공개 의무화를 시행하는 것과는 무척 대조적이다. 일례로 미국은 담배회사로부터 대부분의 담배 성분정보를 받고 있다. 93가지는 유해성분으로 집중 관리한다. 캐나다도 44가지 유해성분을 지정·관리 중이다. 세계보건기구(WHO)도 4000여 가지의 담배 화학물질 중 38개 독성물질을 지정하라고 각국에 권고하고 있다. 전 세계가 보편적으로 제공받는 정보를 유독 우리 국민만 제공받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그나마 적용되는 규제도 전자담배에 한해선 더 무용지물이 된다. 현행 담배사업법은 ‘담배의 연기에 포함된 성분’을 담뱃갑에 명기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전자담배 회사들은 “전자담배가 배출하는 건 연기가 아니라 에어로졸”이라 주장하면서 법 적용을 피하고 있다. 담배의 법적 개념이 담뱃잎으로 만든 제품으로 한정되다 보니 담배 줄기와 뿌리, 합성니코틴 등으로 만든 제품은 규제하기가 어렵다. “한국은 담배 팔기 참 좋은 나라”라는 말이 나오는 건 이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종합해보면 우리 국민들은 사실상 ‘묻지 마 흡연’을 하고 있다. ‘해롭다’는 사실을 대략 인지하고 있지만 담배 성분에 어떤 유해물질이 담겨 있고 흡연 과정에서 얼마나 발생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음료수 한 병을 살 때도 첨가물 종류와 함량을 살뜰히 챙기지만 담배만큼은 ‘깜깜이 구매’를 하고 있는 셈이다.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극복에 역량을 집중하면서 비감염병 정책들은 2년 동안 사실상 ‘올 스톱’ 상태였다. 담배 등 국민 건강에 중요한 영향을 주는 각종 사업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결과 2011년 이후 10년 동안 지속적으로 줄던 1인당 흡연량이 2020년 증가세로 돌아섰다고 한다. “코로나만 막으면 된다”는 사고로는 국민 건강을 지킬 수 없다. 후진적인 담배 관련법 개정이 ‘포스트 코로나’ 정책 변화의 시작점이 되길 기대한다.
유근형 정책사회부 기자 noe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