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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과 놀자!/이야기로 배우는 쉬운 경제]자원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 가격

입력 | 2022-06-17 03:00:00

물건의 수요-공급 알려주고 상황에 따른 대응 제시하는 등 시장서 신호등 역할하는 ‘가격’
적재적소에 자원배분 위해 경매 등으로 가격 조정하기도
시장은 항상 공정하지 않아 가격 맹신하는 태도는 삼가야



가격은 자원을 이동시키고, 적재적소로 자원이 배분 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독점 기업이 폭리를 위해 가격을 높이거나 유명 브랜드가 비싼 가격을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하는 등 가격이 언제나 공정하게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중세 유럽 한 도시가 적군에 포위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공성전이 장기화되면서 성안은 식량난에 시달리게 되었고, 곡물 가격이 치솟았습니다. 영주는 백성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곡물 매매로 폭리를 취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굶주림과 높은 가격에 시달리던 백성들은 그 순간 기뻐했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전까진 비싸더라도 식량을 구할 수 있었는데 갑자기 그마저도 전혀 구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결국 영주는 항복하고 맙니다. 고립된 성에서 몇 달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적군의 포위망을 뚫고 몰래 식량을 가져와 판 밀수꾼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식량 가격을 높게 받지 못하게 되자 그들은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식량을 들여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포위된 성안으로 식량이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밀수꾼의 용기와 애국심 덕분이 아니라 위기를 기회로 삼아 한몫 단단히 챙기려는 밀수꾼의 이기심 때문입니다. 비록 동기는 이기적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성안에 식량이 들어왔고, 굶주리지 않아 적군에 대항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영주의 명령에 의해 가격을 높게 받지 못하게 되자 밀수할 동기가 사라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결국 밀수꾼들을 움직이게 만든 것은 바로 ‘가격’입니다.
○ 자원을 적절하게 배분하는 ‘가격’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는 가격을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부르며 시장에서 가격의 역할에 주목했다. 동아일보DB

경제학의 시작을 연 애덤 스미스는 가격을 ‘보이지 않는 손’이라 부르며 가격의 기능에 주목했습니다. 가격은 신호등과 같은 기능, 즉, 현재 상황과 대응 방향을 함축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어떤 물건의 가격이 높거나 상승하고 있다면 현재 그 물건은 부족하다는 의미입니다. 반대로 어떤 물건의 가격이 낮거나 하락하고 있다면 현재 그 물건은 남아돈다는 의미입니다. KF94 마스크를 생산하는 사람이라면 마스크의 가격이 오르고 있는 추세일 때 생산량을 늘리겠지만, 마스크의 가격이 현재 내리고 있는 추세라면 생산 기계나 설비를 더 늘릴 계획을 세우지는 않을 것입니다.

가격은 자원을 이동시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초기 중국에서는 마스크가 너무나도 귀해서 페트병이나 과일 껍질로 직접 만들어 쓰기도 했습니다. 중국의 상인들은 현금 다발을 들고 와 우리나라의 마스크 공장에서 줄을 서기도 했지요.

또한 가격은 적재적소에 자원이 배분되도록 돕습니다. 제과점에 남은 케이크가 단 하나밖에 없는데, 두 명의 손님이 거의 동시에 사려고 왔다고 가정해 봅시다. 두 경쟁자가 대화를 통해 양보와 타협을 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런 대화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원만하게 거래가 이루어지도록 만들 방법은 없을까요? 선착순이나 제비뽑기로는 확률이 낮습니다.

이 경우에 생각할 수 있는 것이 경매입니다. 가격을 높이는 것입니다. 제과점 주인이 경매를 제안하고 500원만 가격을 높여도 손님 중 한 명은 케이크 대신 쿠키나 도넛 쪽으로 생각을 바꿀 가능성도 있습니다. 반면 손님 중 한 명이 생일 파티를 위해 반드시 케이크를 사야 하는 사람이라면 500원이 아니라 5000원을 더 내더라도 구입할 의사가 있을 만큼 케이크가 간절했을 것입니다. 이럴 때 단돈 500원만 더 내고 케이크를 살 수 있다면 만족하겠지요. 이처럼 협상을 하지 않고도 약간의 가격 조정만으로 적재적소에 자원이 배분되는 일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 가격을 맹신해서는 안 되는 이유
그렇다면 가격은 만병통치약일까요? 가격을 너무 맹목적으로 믿어서는 안 될 이유가 있습니다.

물건의 가치에는 ‘사용 가치’와 ‘교환 가치’가 있습니다. 그런데 가격은 교환 가치만 나타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무리 쓸모 있고 만드는 데 비용이 많이 들어도 교환 가치가 없다면 가격은 형편없습니다. 그래서 가로등과 같은 공공재는 시장 원리로는 생산되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전혀 쓸모없는데도 교환 가치가 있어서 가격이 터무니없이 높은 경우도 있습니다. 최근 폭락한 일부 암호화폐가 이와 같은 예입니다.

가격은 착시를 유발합니다. 우리는 보통 가격이 높으면 좋은 물건일 것이라는 예상을 합니다. ‘싼 게 비지떡’, ‘비싼 물건은 제값을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비합리적인 추측에 해당합니다. 일부 유명 브랜드는 이를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하여 고가 정책을 펴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가격은 시장에서 형성되지만 시장이 항상 공정한 것은 아닙니다. 시장은 약육강식의 정글과 같습니다. 경쟁에서 승자가 된 독점 기업은 가격을 높이고 폭리를 취할 수 있습니다.

가격은 유용한 수단이며 꼭 참고해야 할 필수 정보입니다. 그러나 이를 맹신해서는 안 됩니다. 가격이 제 기능을 발휘하도록 시장에 자유와 경쟁이 적절하게 유지되어야 합니다.


이철욱 광양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