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계백병원 임윤희 마취통증의학과 교수가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 환자에게 신경차단술을 시행하고 있다. 상계백병원 제공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신체 기능의 일부가 영원히 회복되지 않을 정도로 심각한 질병이나 증상이 있다. 신체 기능의 손상 정도에 따라 환자의 일상과 사회활동이 심각하게 제약받는다. 때로는 경제적, 심리적 부담이 커진다. 목재소에서 일하다가 손이나 발을 다쳐 영구적인 장애를 입거나, 건설 현장에서 낙상을 당해 신체에 큰 손상을 입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정부에서는 이러한 상태를 ‘장애’로 인정하고 환자의 일상이나 사회 복귀를 돕기 위해 여러 지원 제도와 장치를 마련했다.
최근에는 장애를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면서 환자들이 적극적으로 장애인으로 인정해 달라고 정부에 요청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정부 지원에 대한 요구 수준과 기대치도 높아지고 있다. 1형 당뇨병 등을 ‘췌장 장애’로 인정해 달라는 움직임이 대표적이다. 1형 당뇨병으로 진단 받은 사람들 중 췌장이 영구 손상돼 제 기능을 하지 못해 의식을 잃거나, 심하면 사망에 이르는 경우가 있다. 이처럼 심각한 췌장 질환은 장애의 범주에 들어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장애’에 해당되면 정부의 제도적 지원으로 혈당 집중관리를 받을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될 뿐 아니라 고용 현장에서 취업의 문이 넓어질 수도 있다. 현재 신장 질환을 앓는 투석 환자 등은 장애로 인정받고 있다.
이 외에 장애 인정이나 재평가 과정에서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한 질환이 있다.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 환자가 대표적이다. CRPS는 사고나 외상(外傷) 혹은 여러 알 수 없는 이유로 신경계가 손상되어 아주 작은 자극에도 엄청난 통증을 느끼는 질병이다.
설령 장애로 인정받더라도 안심할 수 없다. 보건복지부는 장애 인정을 받은 CRPS 환자를 대상으로 2년마다 재평가를 요구한다. 환자와 전문의들은 통상 최초 장애 인정 2년 후 첫 번째 재판정에서 다시 진단되면 추가 재평가를 하지 않는 다른 장애와 비교하면 형평이 맞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또 재평가 과정에서 통증은 여전하더라도 만약 관절구축 등 증상이 완화되면 장애 인정 대상에서 빠질 수 있다. 그러면 장애인으로 받고 있던 그동안의 복지 혜택도 모두 사라진다. 통증으로 힘들어하는 이들에겐 가혹한 처사다.
현장 전문가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장애 유형 자체가 확대되어야 한다고 본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질병을 반영할 수 있는 장애 유형이 도입되어야 하는데, 지금은 기존 지체장애(physical disability)의 범주에서만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이 때문에 증상이 겉으로 드러나는 환자들만 장애 인정을 받고 있는 것이다. 통증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은데도 말이다.
신장 질환으로 인한 장애 판정 제도 역시 보완이 필요하다. 대부분 투석 환자들이지만 이들 중에는 신장을 새로 이식받은 환자들도 있다. 이 환자들은 이식 후 단기간에 ‘경증 장애인’ 판정을 받는 경우가 많다. 정부의 시각에서는 본질적인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경증 장애 즉 ‘심하지 않은 장애’로 분류하겠지만, 신장 이식을 받은 환자가 바로 경제 활동에 나서거나 무리 없이 바로 일상생활을 하기는 쉽지 않다. 전문가들은 이식한 신장이 환자 몸에 부작용 없이 안착하는지 적어도 1년 이상 지켜봐야 한다고 말한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liked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