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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애정하는 ‘모래내 산장’[공간의 재발견/정성갑]

입력 | 2022-06-17 03:00:00

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


“선배 저희 진도 여행 가요. 이번에도 와서 편히 쉬다 가세요.”

후배 나리에게 문자를 받고 야호! 소리가 절로 나왔다. 후배가 ‘모래내 산장’이라 부르는, 다정하고 아름다운 집에서 며칠을 머물 수 있다니 얼마나 좋은가. 이곳은 나리, 택수 부부가 아파트 대신 선택한 2층 벽돌집으로 널찍한 마당도 딸려 있다. 거실도 크고, 주방도 넓어 절로 쾌적한 기분이 된다. 신기한 것이 이곳에 가면 글도 잘 써진다. 살림으로 꽉 차 있지 않고 공간에 여백이 많은데 머릿속도 딱 그곳과 연동돼 동기화되는 것처럼 숨통이 트이고 바람길이 열리는 기분이다.

이곳과 처음 숙박의 연을 맺게 된 때는 작년 겨울이었다. 점심을 먹자고 해 이 집에 놀러갔다가 후배 부부의 여행 소식을 들었다. ‘그럼 그동안 내가 와 있을까?’ 소리가 거의 반사적으로 튀어나왔다. 맞다. 평소에도 주책이 없는 편이다. 막 던진 말을 후배들은 따뜻하게도 받았다. 단독주택은 겨울에 이래저래 신경 쓸 일이 많고 자칫하면 수도관도 얼어 고생하는데 선배가 와 있으면 안심된다는 거였다. 좋은 것도, 챙겨야 할 것도 다 아는 단독주택 생활자들 간의 연대랄까. ‘집사’로 말하자면,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다(하하). 단독주택에 산 지 8년째. 수챗구멍도 미리미리 잘 치우고 밤새 기온이 영하 5도로만 내려가도 싱크대와 화장실을 돌며 똑똑 물을 떨어뜨려 놓는다.

현충일이 낀 6월 연휴, 이곳에서 다시 3박 4일을 보냈다. 하, 이번에도 역시 달콤했다. 지난겨울과 비교하면 또 업그레이드가 된 것이 싱글 침대가 새로 들어왔고 넷플릭스를 바로 볼 수 있는 대형 TV도 자리를 잡았다. 옳다구나,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를 정주행 했고 책 ‘박완서의 말’과 야나기 무네요시의 ‘공예문화’를 번갈아 읽었다. 아침은 꼭 계란 프라이와 토스트를 준비해 감나무 아래에 자리를 잡고 먹었다. 볕과 바람만으로도 완전한 시간이었다. 이곳에서의 시간이 왜 이리 좋나 돌아보니 집에서 가만 쉰다는 것이 비로소 가능한 덕분이었다. 뭉근하게 사람 지치게 하는 가사 노동에서의 산뜻한 해방이랄까. 아침부터 쓰레기 분리배출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고, 택배 박스를 정리할 일도 없으니 공기 속에 자유, 자유, 행복, 행복이 둥실둥실 떠다니는 것 같았다.

두 번째 스테이를 하고 나니 ‘모래내 산장’이 더 애틋하게 느껴진다. 보고 싶고, 만나고 싶고, 오래오래 안녕했으면 좋겠다. 내 집 말고도 가까운 곳에 또 하나의 친애하는 집이 있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몽글몽글 따뜻해진다. 나리야, 택수야 다음 여행 일정은 언제지? 젊어서 여행 많이 다니자. ㅎㅎ


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