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벗드갈 몽골 출신·서울시립대 행정학 석사
한국에서 결혼이주여성이라는 타이틀 아래에 사는 것보다 그냥 외국인으로 사는 것이 나을 때가 있다. 이럴 때는 결혼이주여성과 다문화가정이라는 호칭이 영원히 사라졌으면 하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내 그것이 근본적인 답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결국 문제는 호칭이 아니라 사람들의 인식이다.
한국에서 생활하는 결혼이주여성 동기나 친구들과 만날 때면 한국 생활에서 겪는 힘든 점을 물어본다. 서로 힘든 점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마음의 위안도 얻고 의외의 해결책을 찾기도 한다. 그들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들을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첫째, 결혼이주여성들은 한국말이 서툴기 때문에 대화 내용을 못 알아들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말을 함부로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좋은 의미든 아니든 간에 상대가 모를 것이라고 생각해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되지 않나 싶다. 알아들어도, 알아듣지 못해도 기분이 유쾌하지 않다. “얘는 말을 해도 몰라” “얘는 뭘 알아” 같은 이야기는 설령 정말 상대가 못 알아듣더라도 하지 않았으면 한다.
한데 그때 필자의 옆 창구에서 볼일을 보던 모녀가 필자에게 “아기가 아빠를 너무 좋아한다”며 인사를 건넸다. 필자와 그 남성은 그 말을 듣고 난처한 상황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다시금 다문화가정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떠올랐다. 모르는 이로부터 30세 이상 차이가 나 보이는 누군가와 혼인 관계라는 가정하에 질문을 받았을 경우 독자의 반응이 궁금하다. 아마 기분이 썩 좋지는 않을 것이다.
셋째, 결혼이주여성의 부모를 초청했을 때 비자가 안 나오는 경우다. 아마도 이 문제가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결혼이주여성은 친정이 해외에 있기 때문에 육아나 양육에 친정의 도움을 받기가 어렵다. 물론 시댁이 있지만 여러 사정으로 도움을 받기 힘든 경우가 많다. 최근 몽골 이주여성 커뮤니티에서 이와 관련한 글이 올라와 뜨거운 관심을 받은 바 있다. 한국은 심각한 저출산으로 경제적 손실을 겪는 나라 중 하나다. 정부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년 동안 예산을 쏟아붓고 있지만 뚜렷한 성과는 내지 못하고 있다. 결혼이주여성의 입장에서는 대한민국에서 대한민국 국적 배우자와 만나 슬하에 여러 명의 자녀를 두었는데도 이런 냉정한 대접을 받으니 불만이 클 수밖에 없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다문화가정을 위한 정책이 많으며 정부로부터 다양한 혜택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이렇듯 서로의 입장을 고려해 비자 발급 여부를 신중히 결정했으면 한다. 물론 대사관 비자 발급 규정과 피초청인 등의 입장이 있겠지만, 만약 비자를 ‘불허’할 경우엔 충분한 설명을 해주면 좋겠다. 그래야 불필요한 오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비자 불허 문제는 결혼이주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명문대에 합격해 표준입학허가서를 받은 학생은 물론이고 한국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친 뒤 다시 박사과정을 밟으려는 이들의 비자 또한 불허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보았다. 물론 모든 이에게 비자를 발급해 달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불허’에 대한 설명을 조금 더 해 주면 어떨까 하는 마음에 글을 쓰게 된 것이다. 한국이 좋아서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이 한국에 대해 더 좋은 인상을 갖게끔 말이다.
벗드갈 몽골 출신·서울시립대 행정학 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