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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교전 집중 리시찬스크 참호 ‘집단 매장지’ 되고 있다

입력 | 2022-06-17 11:44:00


우크라이나 전쟁이 우크라이나 동부 루한스크의 세베로도네츠크와 리시찬스크 쟁탈전에 집중되고 있다. 세베로도네츠크에 있던 우크라이나군은 거의 밀려났고 아조트 화학공장에 피신해 최후의 항거를 이어가는 중이며 강건너 지대가 높은 리시찬스크의 우크라이나군은 사거리가 긴 로켓포가 빨리 도착하길 기다리고 있다고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현지 상황을 전했다.

세베로도네츠크에서 강건너에 자리한 리시찬스크에는 포격으로 숨진 시신들 10여구가 비닐에 담긴 채 참호에 집단 매장돼 있지만 흙을 덮지도 않고 방치돼 있다. 옆에는 파낸 흙이 쌓여있고 노랗게 시든 잡초들이 무성하다. 여름 더운 날씨에 악취가 진동한다.

이들은 모두 리시찬스크와 세베로도네츠크, 인근 루비즈네에서 폭격을 당해 숨진 민간인들이다. 가족이나 묻어줄 사람들이 없어 이곳에 쌓인 것이다. 매장지 옆에 서 있는 세르기 베클렌코 상병(41)은 왜 흙을 덮지 않느냐고 묻자 “모든 장비를 군이 가져갔다. 굴착기는 전부 군이 참호를 파는데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쟁이 4개월째 이어지면서 사상자가 크게 늘어남에 따라 참호가 집단매장지가 되고 있다.

전직 경찰관 베클렌코 상병은 전쟁이 터지자 곧바로 입대했다. 그는 집단매장된 시신이 300구에 달한다고 했다. “지난 4월부터 숨진 사람들을 이곳에 묻고 있다”고 했다.

매장지는 우크라이나군 포대가 자리한 구릉지대 근처다. 곡사포가 16일(현지시간) 오전 내내 발사됐다. 양측은 강을 사이에 두고 하루 종일 포격전을 벌이고 있다.

시베르스키 도네츠강을 사이에 둔 리시찬스크와 세베로도네츠크에서 숨진 민간인 숫자는 확인되지 않는다. 러시아군이 세베로도네츠크를 장악하고 리시찬스크 공격에 집중하면서 우크라이나군이 후퇴하지 않을 경우 민간인 사상자가 급증할 것이 분명하다.

16일 현지 당국자는 러시아군의 포격으로 최소 민간인 4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포격은 아침에 있었지만 그 소식은 몇 시간 뒤에야 공식 텔레그램 채널에 올라왔다. 도시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외부에서 파악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전쟁전 인구가 10만명이던 공업도시 리시찬스크는 현재 외부세계와 거의 차단된 상태다. 휴대전화도 연결되지 않고 전기도 끊어졌다. 현지 당국자들은 약 4만명이 시내에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고 밝혔다.

주민들이 남아 있는 이유는 주로 노인과 반려동물 때문이다.

16일 군인과 경찰이 나눠주는 보급품을 받으러 집밖으로 나온 한 여성이 “모두 집을 떠나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했다. “고양이와 강아지는 어떻게 하느냐? 노인들은? 그래서 남아 있다”고 했다. 그는 “피신하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월세를 내야 하니까. 세든 아파트에서는 반려동물을 안받는다. 개 두마리와 고양이 두마리가 있는데 그들을 버리고 떠날 수 있나? 그들을 잃고 나서 나중에 울 수는 없다”고 했다. 그는 옆 집에서 두 사람이 숨졌다고 했다. 그들은 인근 숲에 묻었고 묻힌 자리는 시든 꽃다발로 표시해두었다고 했다.

세베로도네츠크에선 약 500명의 민간인이 화학공장에 피신해 있고 시내에선 일부 우크라이나군이 장악한 지역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발레리 잘루즈니 우크라이나군 참모총장은 세베로도네츠크가 루한스크 지역 방어에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러시아군은 이곳의 우크라이나군을 포위하기 위해 북부와 동부, 남부 3개 방면 9개 경로로 공격해오고 있다고 했다. 그는 우크라이나군이 계속 맞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국자들은 세베로도네츠크에 1만명의 민간인이 남아 있다고 했다. 이들은 대부분 각자도생하고 있다. 세르히 하이다이 루한스크 군사행정 책임자는 “사람들이 방공호에서 더 이상 견디지 못한다. 심리상태가 극한까지 악화했다”고 했다.

시내에 있는 민간인들은 식량과 식수가 바닥이 난 상태다. 마리우폴에서 벌어진 참상이 이곳에서도 재연되기 직전이다.

두 도시를 잇는 다리 세 곳이 모두 파괴된 뒤 세베로도네츠크의 우크라이나군은 탈출하기가 어려워졌다. 16일 도강이 가능한 우크라이나군이 리시찬스크 방어를 위해 후퇴하고 있다는 소식이 있었다. 리시찬스크는 지대가 높다.

리시찬스크의 군인들과 민간인들 모두 무슨 일이 벌어질까 마음을 졸이고 있다.

한 아파트 단지 지하실에 피신하고 있는 우크라이나군 부대원들이 미국이 주기로 한 첨단 로켓이 빨리 도착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사거리가 긴 로켓이 있으면 러시아 포대를 타격할 수 있다. 한 군인이 로켓이 도착하기 전까지는 러시아군 포격이 끝없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 시간이 하루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