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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살 공무원 아들 “前정부, 거짓편지 하나 쥐어주고 벼랑 끝 몰아”

입력 | 2022-06-17 12:53:00

“아버지는 월북자 아니라고 외칠수 있다” 尹에 감사편지




“‘제 아버지는 월북자가 아닙니다.’ 세상에 대고 떳떳하게 소리치고 싶었습니다. 대통령님 덕분에 이제야 해 봅니다.”

서해 연평도 해상에서 북한군에게 사살당한 공무원 이모 씨의 아들(19)이 17일 윤석열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냈다. 윤 대통령 취임 한 달여 만에 문재인 정부의 ‘자진 월북’ 판단이 사실상 뒤집힌 데 대한 감사 편지다.

피살 공무원의 유족은 이날 서울 서초구 변호사회관 강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군의 자필 편지를 공개했다. 이 씨의 부인은 아들의 편지를 대신 읽으며 눈물을 보였다.

이 군은 편지에서 “아버지의 오명이 벗겨지는 기사를 보면서 그 기쁨도 물론 컸지만 전 정부, 전 대통령께 버림 받았다는 상처가 가슴 깊이 자리 잡고 있었기에 혹시나 또다시 상처 받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며 “그래서인지 대통령님께서 저와의 약속을 지켜주신 부분이 크게 와 닿았다”고 했다.

이 군은 앞서 사건 발생 한 달 뒤인 2020년 10월 문 전 대통령과 편지를 주고받았다. 이 군은 이후 문 정부가 진상 규명을 미루자 “북한에 의해 아버지를 잃은 고등학생을 상대로 한 거짓말일 뿐이었다”며 문 전 대통령의 답신을 반납했었다.

이 군은 “(전 정부는) 아버지를 월북자로 만들어 그 죽음의 책임이 정부에 있지 않다는 말로 무참히 짓밟았다”며 “직접 챙기겠다, 늘 함께 하겠다는 거짓 편지 한 장 쥐여주고 벼랑 끝으로 몬 게 전 정부였다”고 비판했다.

또한 이 군은 “명확한 이유도 모른 채 아버지는 월북자로 낙인찍혔고 저와 어머니, 동생은 월북자 가족이 되어야 했다. 고통스러웠다. 원망스러웠다. 분노했다”며 “아버지도 잃고 꿈도 잃고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또래 친구들이 누릴 수 있는 스무 살의 봄날도 제게는 허락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군은 그러면서 “한 국민이 적에 의해 살해당하고 시신까지 태워지는 잔인함을 당했지만, 그 일련의 과정에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고 오히려 피해자가 가해자로 둔갑해 비난받는 상황이 만들어지면서 저는 점점 주눅 들어갔다”며 “지난달 31일 (윤 대통령을) 만나 뵈었을 때 ‘꿈이 있으면 그대로 진행하라’고 해주신 말씀이 너무 따뜻했고, ‘진실이 규명될 테니 잘 견뎌주길 바란다’는 말씀에 용기가 났다”고 적었다.

이 군은 마지막으로 윤 대통령에게 “언제나 약자의 편에 서서 함께 걸어가시는 국민의 대통령으로 남으시길 바라며 아버지의 명예회복에 마지막까지 함께 해주시길 부탁드린다”며 “기회가 된다면 찾아뵙고 감사 인사를 다시 전하겠다”고 했다.

해양수산부 소속 공무원인 이 씨는 2020년 9월 서해 연평도 북방한계선(NLL) 북측 해상에서 북한군이 쏜 총탄을 맞고 숨졌다. 해경은 실종 8일 만에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 씨가 자진 월북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이 군은 그해 10월 문 전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 해경의 발표를 반박했다. 문 전 대통령은 이 군에게 사건을 직접 챙기겠다고 답신했다. 그 뒤 문 정부는 유가족의 정보 공개 요구를 거부하며 소송전을 벌였다. 이후 윤 정부 출범 1개월여 만인 전날 해경·국방부는 “실종 공무원의 자진 월북을 입증할 수 없다”고 기존 입장을 뒤집었다.

정봉오 동아닷컴 기자 bong08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