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올해 성장률 2%대 추락, 저성장 위기 혁신기술의 생산현장 도입 지연이 문제 투자지원, 규제정비로 新성장동력 확보해야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
한국은행, 국제통화기금(IMF)을 비롯한 국내외 기관들의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2%대로 하락하며 저성장의 원인과 극복 방안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하지만 단기적인 시각으로는 저성장에 대한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할 수 없다. 한국의 경제성장률 하락은 최근의 단기적인 현상이 아니라 장기 추세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추세성장률에 관한 필자의 연구에 따르면 1981년부터 2019년까지 15세 이상 생산가능인구 1인당 실질 국내총생산(GDP)에서 일시적인 경기변동 요인을 제거한 추세성장률은 1981년부터 1987년까지 연 7.5%였다. 그러나 1988년부터 점진적으로 하락하기 시작해 2013년 이후부터는 연 2.0%로 떨어졌다. 가장 큰 원인은 총요소생산성 성장이 둔화되면서 노동생산성 증가율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1980년대 연간 평균 5%로 성장했던 총요소생산성은 2013년 이후 성장률이 그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총요소생산성은 생산량에서 노동과 자본 투입량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을 설명하기 위한 개념으로 신기술 개발, 경영 혁신, 생산요소 사용의 효율성 제고 등을 통해 증가한다. 반도체, 2차전지 산업 등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할 뿐만 아니라 정보기술(IT) 산업에서도 끊임없이 혁신을 달성한 한국에서 총요소생산성의 성장률 감소가 저성장 국면으로 진입한 주원인이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생산성 역설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난해 미국 스탠포드대 에릭 브린욜프슨 교수가 동료들과 함께 발표한 논문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이들의 연구에 따르면 AI와 같은 혁신 기술이 개발돼도 실제 활용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기업은 AI 사용 방법을 직원에게 가르쳐야 하고, 설비와 생산 과정 등도 바꿔야 한다. AI 활용에 적합한 경영 기법도 개발하고 노동과 자본도 재배치해야 한다. 기업 입장에서 이런 투자는 이윤은 창출되지 않고 오랜 기간 동안 많은 비용을 지출해야 하는 쉽지 않은 결정이다. 그러나 성공적으로 신기술을 생산 과정에 활용하게 되면 총요소생산성이 급격히 증가해 기업은 막대한 이윤을 창출할 수 있고 이는 새로운 경제 성장 동력이 된다.
기술 혁신을 위한 연구개발 투자도 중요하지만 혁신의 결과가 경제 전반에 안착해야 비로소 기술 혁신이 생산성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정부의 역할은 이 과정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게 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기업들이 신기술의 적용 범위를 넓히고 보다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생산 설비와 과정을 조정할 수 있는 투자를 지원하는 것, 그리고 관련 규제를 시의적절하게 정비해 혁신 기술과 발맞출 수 있게 하는 것 말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정부가 발표한 대대적인 기업 규제 철폐 계획은 환영할 만하다.
또한 인적 자본의 중요성도 간과할 수 없다. 혁신 기술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는 이에 적합한 인재를 갖추고 있는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교육지표 2021에 따르면 한국 청년층의 고등교육(대학) 이수율은 OECD 평균 45.5%에 비해 월등히 높은 69.8%로 OECD 38개 국가들 중 1위이다. 반면 학생 1인당 고등교육 공교육비 지출은 1만1290달러로 OECD 평균인 1만7065달러의 66%에 불과하다. 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 지출 확대가 절실하다.
이와 더불어 산업의 역동성을 강화하기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경기 불황에는 생산성이 낮아 경쟁력이 없는 기업들이 시장에서 퇴출되고, 호황일 때는 새로운 기업들이 시장에 진입해 경쟁력 있는 기업들만 시장에서 생존한다. 이 과정을 통해 노동과 자본 배분의 효율성이 개선돼 총요소생산성의 성장률이 증가한다. 그러나 최근 한국은행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신생 기업들의 시장 진입과 기존 기업들의 퇴출이 동반 감소해 산업의 역동성이 줄어들고 있다. 한계기업의 퇴출을 촉진하고 혁신적인 신규 기업의 시장 진입을 지원해 역동성을 강화해야 지속적인 경제 성장의 기반을 닦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