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퀀텀 라이프/하킴 올루세이 등 지음·지웅배 옮김/424쪽·1만8000원·까치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바라본 지구. NASA 제공
100명 중 3명. 2020년 미국 물리학 전공자 중 흑인 비율이다. 1999년에는 이 비율이 4.8%였다. 약 20년간 전체 물리학 전공생 수는 늘었지만 흑인 비율은 도리어 줄었다.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는 올 3월 과학계의 인종차별을 지적하면서 이 수치를 공개했다.
흑인인 저자는 ‘흑인이 백인과 똑같은 대우를 받으려면 두 배는 더 똑똑해야 한다’는 과학계 인종차별을 비롯해 학대, 가난으로 얼룩진 유년 시절을 딛고 천체 물리학자가 됐다. 하루 한 끼 먹기도 어려운 미국 남부 빈민가에서 자란 그에게는 맥도널드가 생일날 가는 고급 레스토랑이었고, 집에 수도 배관이 없어 펌프로 물을 퍼야 했다. 폭력과 범죄가 일상이던 빈민가에서 태어나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와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교수로, 그리고 미국항공우주국(NASA) 과학임무국에 근무하는 유일한 흑인 물리학자로 거듭난 과정이 담겼다.
저자의 삶은 ‘이보다 더 바닥일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하다. 지독한 가난보다 더 지옥 같았던 것은 가정폭력이었다. 아빠가 엄마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리고, 엄마는 아빠가 누워 있던 침대에 불을 지르는 장면을 눈앞에서 지켜봐야 했던 네 살 아이는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강박적으로 숫자를 세는 버릇을 갖게 됐다. 대마초를 팔아 생계를 유지했던 엄마를 대신해 그는 대마초를 포장했다. 어렸을 때부터 접했던 마약은 성인이 된 그를 마약중독자로 이끌었다. 투갈루대 재학 시절 그는 대마초를 판 돈으로 코카인을 샀다. 36시간 동안 쉬지 않고 코카인을 흡입할 정도로 중독은 심각했다.
빈민가의 흑인으로 태어난 하킴 올루세이는 인종차별, 마약중독, 가정폭력을 견뎌내고 세계적인 천체물리학자가 됐다. 저자는 아프리카의 차세대 우주 과학자들의 교육을 돕는 일에 뛰어들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흑인 천문학과 학생들을 멘토링하기도 했다. 사진 출처 하킴 올루세이 페이스북
양자역학에는 터널링이라고 불리는 현상이 있다. 거시 세계에서는 결코 통과할 수 없는 벽을 미시 세계에서의 입자가 뚫는 것을 말한다. 저자는 자신의 삶을 터널링에 비유한다. “나의 삶은 마치 새로운 벽을 마주해서 반대 방향으로 강하게 튕겨 나가면서도 결국은 벽을 통과하는 데 성공하는 진동 패턴과도 같았다.” 자신은 운명이 결정돼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는 것. 그리고 말한다. “우주는 광활하다. 그러나 무한하지는 않다. 유한하다. 내가 관측한 것 중에 무한에 가장 가까운 것은 바로 희망이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