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하주석의 유니폼에 주장을 의미하는 ‘C’가 새겨져 있다. 이 사건으로 C자가 민망해졌다.
스트라이크-볼 판정에 격분해 배트를 바닥에 강하게 내려치고, 심판에게 퇴장 명령을 받자 심판을 향해 욕설을 하고, 더그아웃에 들어가서는 헬멧을 내동댕이쳤는데, 벽을 맞고 튀어나온 그 헬멧이 하필이면 외국인 수석코치의 뒤통수를 강타했고, 이를 뻔히 보고도 무심히 라커룸으로 들어가 버린 한화 이글스 주장 하주석(28)이 물의를 빚은 지 하루 만에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됐습니다.
한 문장으로 정리하고 보니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네요. 아무튼 한화는 17일 NC 다이노스와의 창원 방문경기를 앞두고 하주석을 2군으로 내려 보냈습니다. 하주석은 구단을 통해 “주장으로서 경솔한 행동으로 팬들과 동료들에게 실망을 안겨드려 죄송하다. 심판께도 사과드린다. 2군에서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더 성숙한 사람이 되겠다”고 전했습니다.
올해도 최하위에 머물고 있는 한화로서는 뼈아픈 일입니다. 야구를 못하는 것도 모자라 매너에서도 팬들에게 실망감을 안기고 말았으니까요. 특히 하주석의 행동은 야구 뿐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서 지켜야 할 ‘TPO(시간·장소·경우)’를 모두 어겼습니다. 더구나 주장(Captain)을 의미하는 ‘C’자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은 선수로서는 더욱 해선 안 될 일이었습니다.
두 번째로 장소(Place)도 아쉽습니다. 야구에서 분노 표출을 심심찮게 일어납니다. 그런데 모든 관중이 지켜보고, 중계도 이뤄지는 상황에서 분노 조절에 실패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대부분의 선수들은 다른 사람의 시선이 닿지 않는 라커룸 등에 들어가 분노를 삭입니다. 예전 수도권 A 구단은 라커룸에 복싱 선수들이 사용하는 샌드백을 비치해 두기도 했습니다. 화가 쌓이면 언제 터질지 모르니 샌드백에 풀라는 의도였지요. 반대로 B구단에서는 철문을 주먹으로 때리다 부상을 당하는 선수가 나오기도 했지요. 가끔 메이저리그에서는 공개적으로 분노를 표하는 선수가 나오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런 선수들은 대개 팀의 대표 선수이거나, 그 정도의 분노 표출은 용인되는 전국구 스타급 선수들입니다.
삼진 아웃을 당한 뒤 방망이를 땅에 내려치는 하주석. SBS스포츠 중계화면 캡처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경우(Occasion)에 맞지 않았습니다. 의도치 않게 벽을 향해 던진 헬멧이 웨스 클레멘츠 수석코치의 뒤통수를 때렸는데 하주석을 이를 보고도 그냥 지나쳤습니다. 구단에 따르면 하주석은 경기 후 곧바로 동료들과 클레멘츠 코치를 비롯한 코치진에 사과했다고 합니다. 자칫 더 큰 불상사로 이어지지 않은 게 다행입니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것은 팀 분위기 상 이런 하주석의 행동이 용인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주석은 지난해에도 라커룸에서 방망이를 부러뜨리고, 기물을 부수다가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에게 엄중 경고를 받았습니다. 이 장면은 동영상 서비스(OTT) 플랫폼 왓챠를 통해 공개된 구단 다큐멘터리에서 고스란히 방영됐습니다. 당시 수베로 감독은 하주석을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너 방망이 부순 게 세 번째야. 지금 5-0으로 앞서가고 있어. 이기고 있잖아. 우리가 지고 있는 게 아니야. 네가 안타를 몇 개 치든 상관없어. 지금 팀은 이기고 있다고 알겠어?” 또 하주석이 부순 방망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네가 리더라면 저런 짓은 하지 말아야지. 팀은 이기고 있다고. 네가 10타수 무안타라도 상관없어. 팀이 이기고 있는데 왜 그러는 거야. 마지막 경고야”라고 소리칩니다.
하지만 하주석은 1년이 지나도 전혀 달라진 게 없습니다. 야구는 개인 종목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팀 스포츠입니다. 경중을 따지자면 팀이 중요합니다. 자신은 무안타에 그치고, 팀이 이긴다면 화가 날 수 있지만 최소한 티는 내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만 잘하고, 팀이 졌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는 말도 일맥상통하지요. 야구를 잘하는 강팀에는 ‘팀 퍼스트’의 특유의 문화가 있습니다.
팀에서 주장이란 자리는 자신보다는 팀을 위해 희생하는 자리입니다. 하주석은 이미 주장으로서의 의미를 잃었습니다. 수베로 감독의 경고처럼 그 피해는 고스란히 팀이 받고 있지요. 강팀의 문화를 만들기까지 한화의 보살 팬들은 얼마나 더 인내해야 하는 걸까요.
이헌재 기자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