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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준씨 월북 판단 근거 ‘軍자산’…공개 시 자산 노출· 비밀주의 부작용 우려

입력 | 2022-06-20 08:26:00


해양수산부 어업지도 공무원 이대준씨 피살 사건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는 가운데 여당인 국민의힘은 사건이 기록된 대통령 기록물을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록물이 공개될 경우 군이 이씨 월북을 추정하게 한 정보 자산들이 노출될 우려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방부와 군은 2020년 9월 서해 해상에서 사건이 발생할 당시 여러 첩보를 종합한 뒤 이씨가 스스로 월북했다고 결론 내렸다. 이 과정에서 각종 첩보 자산이 동원됐지만 국방부와 군은 세부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그간 이미 공개됐던 자료를 토대로 어떤 자산이 활용됐을지 추정할 수 있다.

한미 연합군은 남북 접경 지역에서 나오는 암호화된 통신과 전파를 잡아내 분석하는 첩보 능력을 갖추고 있다.

미군 정찰기가 대표적이다. 미군 통신 감청 정찰기인 RC-135V/W 리벳조인트는 550㎞ 범위 안에서 전자·통신정보를 탐지한다.

RC-12X 가드레일은 감청에 특화한 정찰기다. RC-12X 가드레일은 370㎞ 떨어진 곳에서도 북한군 통신과 교신을 감청할 수 있어 휴전선 부근 북한군 통신을 잡아낼 수 있다.

한국군이 운용하는 신호 정보 수집기인 ‘백두’는 휴전선 인근을 포함한 북한 전역에서 발신되는 전자정보를 수집한다. 이스라엘제 헤론 정찰기도 서북도서에서 북한 움직임을 감시한다.

영상 촬영에 특화된 정찰기들도 있다. 고고도 전략 정찰기 U-2S 드래건 레이디는 휴전선 인근 15~20㎞ 고도에서 150㎞ 떨어져 있는 북한 지역 사진을 찍는다. E-8C 조인트 스타스는 300㎞ 떨어진 상공에서 지상 표적 600여개를 동시에 감시한다. 한국군 RC-800G 금강 정찰기는 최대 180㎞까지 영상을 촬영할 수 있다. 최신예 고고도 무인 정찰기인 글로벌 호크 역시 빼놓을 수 없다. 글로벌 호크는 20㎞ 상공에서 지상 30㎝ 크기 물체를 식별해 사진을 찍는다.

정찰위성은 더 강력하다. 키 홀(Key Hole, 열쇠 구멍)로 불리는 미군 첩보 위성은 적외선 탐지기를 갖추고 있으며 북한 내 지상 10㎝ 크기 물체를 식별할 수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외에 라크로스 합성개구 레이더 위성(SAR), 적외선 탐지 조기 경보위성, 우주기반 적외선 탐지 체계 등 미군 자산이 북한 전 지역을 감시하고 있다.

탈북자 네트워크나 북·중 접경지역을 오가는 소식통 등 사람을 이용해 얻는 북한 내부도 있다. 이를 휴민트(HUMINT·인간정보)라고 부른다. 기술 발달로 휴민트가 정보 분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줄었지만 휴민트는 기술력만으로는 접근하기 어려운 북한 속사정을 파악하는 데 필요하다.

이렇게 수집된 SI(Special Intelligence) 첩보를 분석하는 부대는 777(일명 쓰리세븐)사령부다. SI는 무선 교신 감청 등에 의해 수집된 특별 취급 첩보다. 단편적인 첩보들이 모여 완성된 정보로 생산된다.

777사령부는 북한 속사정을 들여다보고 있다. 김진호 전 합동참모의장이 발간한 자서전 ‘군인 김진호’에 따르면 한국군은 북한군 내부를 상당 부분 파악하고 있다. 김 전 의장은 자서전에서 북한군 교신 내용을 근거로 1999년 6월15일 발생한 제1차 연평해전 때 북한군 사상자가 130여명에 달했다고 밝혔다.

에드워드 스노든이 폭로한 NSA(미국 국가안보국) 내부 자료에서도 한국군 첩보 능력이 드러났다. 스노든에 따르면 2006년 기준 한국군 첩보 인력은 3100명 수준이었다. NSA의 한국 지부인 서슬락(SUSLAK)에는 777사령부 요원과 주한미군이 함께 근무하며 수집된 정보를 공유하고 분석한다.

스노든 폭로에 따르면 NSA 지원을 받아 운영하는 한국 내 감청 기지는 22곳이다. 지상 고정 시설, 이동식 시설은 물론 해상과 공중에서 운용하는 장비도 있다. 첩보 기지는 서북도서에서 동해안에 이르는 접경지역에 집중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이 같은 정보 자산 등이 어떻게 작동하는지가 북한에 노출될 때다.

2020년 9월 이씨 피살 후 국회를 중심으로 정보 자산이 노출돼 군 당국이 당혹감을 느낀 바 있다. 이씨 피살 전후로 북한 단속정과 육상 부대 사이 오간 통신 내용이 사실 여부를 떠나 정치권에서 경쟁적으로 유출됐었다.

국방부와 군은 민감한 첩보 사항들을 임의로 가공하거나 무분별하게 공개하는 것은 임무 수행에 많은 지장을 초래한다고 보고 있다. SI 첩보 사항을 유출하는 것은 한미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어떤 정보 자산으로 어떤 정보를 수집했는지 북측에 고스란히 알려주는 격이기 때문이다.

SI가 유출되면 북한은 통신 주파수를 바꿔버리거나 해당 주파수를 사용하지 않는다. 북한이 사용하는 새로운 주파수를 찾는데 수개월이 걸릴 수도 있다.

북한은 감청을 피하기 위해 여러 대책을 마련해왔다. 북한은 광케이블 유선 통신망을 평양과 전연지대 사이에 가설해 활용했다. 또 무선 교신의 경우 주파수 대역과 암호 체계를 지속적으로 바꾸는가 하면 역정보를 흘려 한미 정보당국에 혼선을 일으키려 한다.

SI 첩보 수집 방식이 노출되면 정작 파악해야할 북한 고급 정보를 놓칠 수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건강 이상설이 불거졌을 때 양치질을 할 수 있는 상태라는 등 민감한 첩보가 공개됐다. 이를 계기로 북한 권력 핵심층에 접근할 수 있었던 정보원들이 줄줄이 숙청돼 대북 인적정보(휴민트)가 거의 와해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 결과 한국 정부는 2011년 12월19일 김정일 위원장 사망 사실을 파악하지 못했다. 정보 당국은 당일 낮 12시 북한 발표에 나오기 전까지 파악하지 못해 비판이 일었다. 당시 원세훈 국가정보원장은 김정일 사망 사실을 북한 조선중앙TV 방송을 통한 발표 전까지 모르고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2015년에는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이 미국산 세스나 경비행기를 이용하는 사실이 공개됐다. 그러자 김 위원장은 세스나 탑승을 중지했다. 당시 군 정보 당국은 김 위원장의 세스나 이용을 특수정보로 파악하고 김 위원장 동선 파악에 활용했지만 이 사실이 외부에 노출되면서 무용지물이 됐다.

다만 지나치게 비밀주의를 유지할 경우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정부가 의도적으로 정보를 왜곡하거나 명백한 실수를 했을 때도 정보 자산 보호를 이유로 실체를 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번 이씨 사건과 같은 논란이 재발하는 것을 막으려면 대북 첩보와 관련된 정보를 공유하거나 공개하는 기준을 명확히 설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된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