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임수 경제부 차장
지난주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한꺼번에 0.75%포인트 올리는 ‘자이언트 스텝’을 28년 만에 단행했다. 이어 다음 달 또 한 차례 자이언트 스텝 가능성을 내비쳤다. 연말까지 기준금리를 현재의 2배인 연 3.4%로 올릴 뜻도 시사했다. 고강도 긴축으로 경기 침체가 우려되는데도 예상보다 강력하고 장기화하는 인플레이션을 통제하기 위해 금리 인상에 액셀을 밟겠다는 것이다.
연준의 인상 조치로 미국 금리 상단(1.75%)은 한국 기준금리와 같아졌고, 다음 달엔 금리 역전마저 우려된다. 이렇게 되면 한국에 투자한 외국인 자금이 미국으로 유턴하면서 금융 불안을 증폭시킬 수 있다. 이미 외국인은 올 들어 18조 원이 넘는 국내 주식을 팔아치웠다. 자본 유출로 가뜩이나 1300원에 육박한 원-달러 환율이 더 올라 수입물가를 끌어올리고 인플레이션을 부추기는 악순환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이런 파급 구조를 감안하면 다음 달 한국은행이 사상 처음 ‘빅 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벌써 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국내 국고채 3년물 금리는 11년 만에 최고로 치솟았고 시중은행 주택담보대출 고정금리는 13년 만에 7%를 넘어섰다. 주택담보대출 최고 금리가 연내 10%를 돌파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금리를 올린다고 치솟는 물가를 잡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지금의 고물가는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와 글로벌 공급망 차질 등 외부 요인이 크기 때문이다. 오히려 급격한 금리 인상이 소비와 투자 위축을 불러와 경기를 냉각시킬 방아쇠가 될 수 있다. 자산시장 거품을 꺼뜨려 금융 부실과 집값 폭락 등 예상치 못한 후폭풍을 몰고 올 수도 있다.
이미 기초체력이 약한 신흥국의 위기는 현실화하고 있다. 스리랑카, 파키스탄 등은 국가부도 직전에 몰려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살인적 인플레와 미국 금리 인상에 따른 유동성 압박 등으로 디폴트(채무 불이행)에 몰리는 신흥국이 늘고 있다. 2010년 재정 위기를 겪었던 스페인,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도 심상치 않다.
윤석열 정부가 현 상황을 복합위기로 진단하고 ‘경제 위기 태풍’이 몰려올 것으로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럴수록 정책당국은 세제 지원, 공급망 관리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물가 안정에 주력해야 한다. 인플레 기대 심리를 자극할 선심성 정책은 피해야 한다. 취약계층의 부담을 덜고 가계부채 연착륙을 유도할 방파제도 필요하다. 여야도 소모적 정쟁을 멈추고 위기 극복에 힘을 보태야 한다. 복합위기를 헤쳐가려면 정부는 물론이고 정치권, 기업, 국민 모두가 긴축 고통을 분담하는 헌신이 필요하다.
정임수 경제부 차장 im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