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직 대통령 사저 앞 ‘고성 시위’가 논란이 되는 등 전국적으로 집회 소음 민원 신고가 최근 크게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서 소음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데, 현행법으로는 실제 경찰이 집회 소음을 통제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21일 경찰에 따르면 전국 112신고 통계에서 신고 키워드에 집회, 시위가 추출되는 건수가 지난 3월 2998건, 4월 3661건, 지난달 4074건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두달 사이 1000건 이상 급증한 셈이다.
집시법 제14조는 집회 및 시위 주최자가 확성기 등을 사용해 ‘타인에게 심각한 피해를 주는 소음’을 발생시켜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집회 과정에서 발생한 소음이 법정 기준치를 넘을 경우, 경찰은 ‘소음유지명령’ 세 번, ‘소음중지명령’ 세 번을 거쳐 수사를 의뢰할 수 있다. 이때 주최 측이 소음중지명령에 불응하면 집회에 사용된 확성기나 방송차량 등이 경찰에 일시보관조치될 수도 있다.
일례로 이달 5일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이끄는 자유통일당은 서울 도심에서 밤샘 집회를 열면서 평균 소음 86dB를 넘겨 경찰 조사를 받게 됐다.
하지만 실제 주거지 등 근처에서 허용치를 넘어선 소음을 내더라도 곧장 수사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관련법에 따르면 1시간에 세 번 이상 기준치를 초과해야 경찰이 개입할 수 있다. 이 점을 악용해 주최 측은 1시간에 최고 소음을 두 번만 내는 방식으로 법망을 피해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서 각기 다른 단체의 집회가 열릴 경우 소음을 측정하기 쉽지 않다는 점도 문제다. 매주 수요일 소녀상 인근에서 열리는 정의기억연대의 수요시위와 극우단체 간 갈등이 대표적이다. 여러 단체가 확성기 등을 이용해 고성을 지르지만, 소음 기준치를 초과하는 단체를 특정하기 어렵다고 한다.
인근에서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 A(26)씨는 “업무가 불가능할 정도로 힘들다”며 “직장인이 나오는 점심시간을 노려서 더 시끄럽게 하는 것 같다. 수요일 휴게시간에는 절대 낮잠을 잘 수 없다”고 토로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현장 경찰관들도 답답함을 호소하는 상황이다. 경비과에서 근무 중인 한 경찰관은 “집회 주최자는 이슈를 크게 만들려는 목적이니 최대한 소리를 크게 내고, 주민들은 최대한 소음 기준을 엄격하게 하고 싶어해서, 현장에서 관리가 어렵다”고 말했다.
이에 경찰 내부에서도 집회 소음 기준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광호 서울경찰청은 전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집회 소음 법령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강력하게 개진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 역시 집시법 조항을 다듬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핵심적인 부분은 1시간에 3번 이상 최고 소음 기준을 넘길 때 규제하는 것인데, 최고 소음 기준을 무조건 1회라도 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며 “독일은 최고 소음 기준이 45㏈로 매우 낮고, 일본은 의사당 인근에서는 확성기를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등 규제가 강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경찰의 과잉진압, 과잉규제는 집회 및 시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문제가 생길 수 있으므로 섬세하게 기준을 나눠서 법 조항을 정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만 현장에서는 법 개정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시위대와 주민들 사이의 입장차를 좁히기 쉽지 않을 것이란 이유에서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