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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심리감정’ 의견도 묵살…‘공황상태 월북’ 발표했다”

입력 | 2022-06-22 03:00:00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논란]
성급한 ‘피살 공무원 월북’ 단정 정황




2020년 10월 22일 윤성현 당시 해양경찰청 수사정보국장이 인천 연수구 해양경찰청 대회의실에서 서해 피살 공무원 이대준 씨와 관련된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인천=뉴스1

해양경찰청이 2020년 9월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당시 ‘실종자(고 이대준 씨) 심리 상태에 대한 전문가 정식 자문이 필요하다’는 내부 의견이 나왔음에도 이를 묵살하고 “실종자가 정신적 공황 상태에서 월북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발표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문을 의뢰한 건 발표 하루 후인 2020년 10월 23일이었다. 이를 두고 “월북이라는 결론을 내기 위해 절차를 생략하고 성급하게 발표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 “수사에 활용하려면 정식 의뢰해야”
21일 동아일보 취재와 국가인권위원회 자료 등을 종합하면 당시 해양청 정보과는 전문가 7명에게 전화해 언론에 나온 내용을 바탕으로 의견을 청취했는데, 이 중 1명이 ‘(이 씨가) 정신적 공황 상태일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을 냈다. 정보과는 이를 정리해 ‘인터넷 도박 중독에 따른 월북 가능성 자문 결과’라는 약식 보고서를 작성해 내부에 공유했다.

당시 정보과 소속이었던 해경 관계자는 21일 동아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당시 실종자의 정신 상태를 알고자 참고로 물어본 것”이라며 “(보고서는) 참고 자료로 수사 사항이 아니었다. 사용하려면 수사과에서 정식으로 의뢰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정보과에서 취합한 정보는 참고만 하고 수사에 공식적으로 활용하는 건 어렵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전문가 정식 의뢰는 이뤄지지 않았고 윤성현 당시 해양경찰청 수사정보국장은 2020년 10월 22일 3차 중간수사 결과 발표에서 “정신적 공황 상태에서 현실 도피 목적으로 월북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단정적으로 밝혔다. 또 “실종자는 인터넷 도박에 깊이 몰입돼 있었다”고도 했다.


○ 발표부터 하고 정식 의뢰…인권위 “추측과 예단 기초”

정봉훈 해양경찰청장이 22일 인천 연수구 해양경찰청에서 국민의힘 해수부 공무원 피격사건 진상조사 TF 위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다.  인천=원대연기자 yeon72@donga.com



해경이 정식으로 이 씨의 심리 상태 진단을 의뢰한 건 3차 중간수사 결과 발표 다음 날인 2020년 10월 23일이었다. 이때 의뢰받은 전문가 3명 중 2명은 ‘당사자가 사망한 상태에서 제한된 정보만으로 도박장애 여부를 진단하는 건 어렵다’는 취지의 의견을 냈다. 1명만 ‘고도의 도박중독 상태’라는 취지의 의견을 냈다고 한다. 해경은 ‘인터넷 도박’을 원인으로 지목했지만 다수의 전문가가 ‘단정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낸 것이다.

이 씨 유족 측으로부터 진정을 접수해 조사에 나선 인권위는 지난해 6월 정보과에서 취합한 전문가 7명의 의견을 정식 자문 의견으로 보기 어렵다는 취지의 결정문을 발표했다. 인권위는 “3차 발표 당시 해양청에서 참고했다는 자문 의견이 객관적이거나 신뢰할 수 있는 수준의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3차 중간수사 결과 발표에서 실종 직전 정신적 공황 상태에서 월북한 것으로 발표한 행위는 추측과 예단에 기초한 것으로 보여 공정한 발표라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윤성현 당시 수사정보국장 등이 이 씨의 명예와 사생활 보호에 소홀했다며 경고 조치하라고 해경에 권고했다.

해경 측은 3차 중간수사 결과 발표 전 ‘전문가 정식 자문이 필요하다’는 내부 의견을 묵살한 채 발표를 강행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사실관계 확인이 필요한 사항이라 내부적으로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천=공승배 기자 ksb@donga.com
이승우 기자 suwoong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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