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봉구의 한 오피스텔에 사는 장모 씨(30·여)는 비흡연자이지만 외출을 하고 돌아오면 집안에 가득 찬 담배냄새 때문에 매번 인상을 찌푸린다. 이웃집 담배냄새가 화장실 환풍구를 타고 들어와 장 씨의 집 안에 퍼져 있기 때문이다. 장 씨는 화장실 수건과 칫솔에 누가 피운 것인지도 모르는 담배냄새가 밴 것 같아 늘 찜찜하다. 담배냄새가 너무 심하게 나는 바람에 잠을 자다가 깬 적도 있다.
참다 못한 장 씨는 ‘집에서 담배를 피우지 말아 달라’는 내용의 쪽지를 오피스텔 엘리베이터에 붙였지만 바뀌는 건 없었다. 장 씨는 “공동주택에서 담배를 피우는 건 너무 이기적인 행동”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장 씨처럼 ‘층간흡연’으로 고통을 받는 이들이 적지 않다. 층간흡연이란 이웃의 담배연기가 환풍구, 출입문, 창문 등을 통해 다른 집 안으로 들어오는 간접흡연의 일종이다. 층간흡연은 층간소음과 마찬가지로 이웃간 다툼과 분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문제는 집이라는 사적공간에서 이뤄지는 흡연인 만큼 이를 강제로 규제할 방안이 없다는 점이다.
● 층간흡연 노출 어린이, 아토피 발생 위험 1.4배
층간흡연과 같은 간접흡연은 불쾌감 유발을 넘어 건강에 큰 악영향을 미친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 국가금연지원센터에 따르면 간접흡연에 노출된 성인은 뇌졸중, 폐암, 심장질환 등이 생길 가능성이 높고, 어린이는 중이염, 천식 등 호흡기질환 발생 위험이 높다.● ‘금연아파트’도 층간흡연 막기엔 역부족
미국 캘리포니아 층간흡연 캠페인
층간흡연을 중재할 주체도 마땅치 않다. 공동주택관리법은 관리사무소에 그 역할을 맡기고 있다. 층간흡연 피해자가 관리사무소에 피해 사실을 알리면 관리사무소장 등이 층간흡연 피해를 끼친 입주자에게 흡연을 중단하도록 요청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하지만 관리사무소 직원들이 입주자 흡연을 일일이 제재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일명 ‘금연아파트’ 제도도 층간흡연 피해를 줄이기에는 역부족이다. 현재 국민건강증진법을 근거로 공동주택의 거주자 절반 이상이 동의하면 각 지방자치단체장은 해당 공동주택의 복도, 계단, 엘리베이터, 지하주차장 등 외부 공용 공간을 금연구역으로 지정할 수 있다. 하지만 ‘세대 내 주거 공간’은 지정 가능한 금연구역에 해당하지 않는다. 금연아파트에서도 집이나 화장실에서의 흡연은 막을 수 없는 실정이다.
● “흡연자에게 경각심 줄 수 있는 캠페인 필요”
이 때문에 법적인 규제로 층간흡연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해외에서도 집과 같은 사적인 공간을 금연구역으로 지정한 사례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전문가들 역시 강제적인 조치보다 더욱 중요한 건 ‘층간흡연의 위해성에 대한 인식 전환’이라고 지적한다. 이성규 한국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장은 “한국처럼 아파트가 많은 국가에선 공동주택 내 흡연에 대해서 경각심을 주는 캠페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아랫집 성인이 핀 담배 연기가 환풍구를 타고 올라가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윗집 어린이에게 퍼지는 영상을 캠페인에 활용하기도 했다. 이 센터장은 “‘내 집에서 내가 담배를 피우는 게 뭐 어떤가’하는 차원이 아니라, 층간흡연이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고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소영 기자 ks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