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언론과 보수·절반의 국민 외면하고 북한 김정은에는 깍듯했던 문 전 대통령 국익보다 지지층 위하는 ‘인민주의 체제’ “서해 공무원 구하라” 지시 안 한 이유였나
어업지도선 무궁화 10호 /뉴스1
상상을 해봤다. 2020년 9월 22일 해양수산부 서해 어업지도선을 타고 중국어선 불법조업 실태를 현장 취재하고 있었다. 그러다 아차 실족해 북쪽 바다까지 올라가 북한군에 발견됐다면 어찌 됐을까를.
말도 안 되는 상상이라는 것, 안다. 그럼에도 오후 6시 36분 서면보고를 받은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면, 난 그대로 숨이 멎었을 것 같다.
좀 더 상상력을 발휘해 내가 오후 10시 30분 북한군에 사살돼 불살라졌다고 치자. 제 나라 국민이 끔찍하게 죽었는데도 청와대가 이를 10시간이 넘도록 대통령한테 보고도 않는다는 건 죽었다 깨도 납득 못 할 일이다.
서면보고 받을 때까지 살아있던 대한민국 공무원이 원통하게 죽임을 당한 그 시각, 문 전 대통령이 혹시 혼술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알 수 없다. 이 첩보를 놓고 청와대가 23일 오전 1시부터 관계장관회의를 하면서도 대통령에게 보고도 안 한 건 ‘북한 퍼스트’와 대통령 심기를 빼놓고는 설명이 안 된다. 오전 1시 26분부터 42분까지 종전선언을 촉구하는, 당시 문 대통령이 사전 녹화한 유엔총회 연설 TV 방송이 나올 것이어서 대통령도 깨어 있었을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의 고 이대준 씨(사망 당시 46세) 유족이 ‘월북 조작’ 의혹이 있다며 문 정권 고위 관계자들을 22일 검찰에 고발했다. 나는 이보다 더 큰 문제가 문 전 대통령이 “우리 국민을 최선을 다해 구출하라”는 지시를 안 내린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문 대통령에게는 우리 국민의 생명보다 북한이 더 중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자인 윤소영 전 한신대 교수는 문 정권의 문제를 ‘인민주의 체제’로 설명한다(신동아 2022년 1월호). 흔히 포퓰리즘을 대중영합주의로 번역하지만 문 정권에선 그 번역도 사치다. 반(反)엘리트주의, 반의회주의, 세월호 침몰을 계기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분노와 복수, 증오, 원한으로 뭉친 인민주의가 더 들어맞는다.
노무현 정부 때만 해도 인민주의는 ‘이념’ 차원이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처럼 지지층의 생각과 다른 정책도 국익에 도움이 되면 추진했다. 그러나 문 정권은 인민주의를 ‘정치체제’로 받아들였다. 국익에 도움 되는 정책도 핵심 지지층의 생각과 다르면 절대 추진하지 않았다. 친북세력이 득세하면서 핵심 지지층이 누구로 바뀌었는지는 의미심장하다.
자신을 지방 영주처럼 ‘남쪽 대통령’이라고 했던 문 전 대통령이었다. 2020년 ‘종전선언’을 위해 북한 김정은에게 모든 주파수가 맞춰져 있었다면, 이대준 씨는 국민이 아니라 종전선언의 훼방꾼처럼 보이지 않았을지 소름이 돋는다.
퇴임 직전 문 전 대통령은 손석희와의 인터뷰에서 “부동산 보유라든지 투기라든지 모든 면에서 늘 ‘저쪽’이 항상 더 문제인데 ‘저쪽’의 문제는 가볍게 넘어가는 이중 잣대도 문제”라고 말했다. 정권 교체세력을 ‘저쪽’이라고 표현했지만 실은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 이재명을 지지하지 않은, 문 전 대통령이 임기 내내 갈라치기 했던 국민의 과반수가 바로 저쪽이라는 얘기다. 심지어 그는 퇴임 후 ‘짱깨주의의 탄생’이라는 책을 추천함으로써 친북에 이어 친중 성향까지 고백하고 말았다.
북한과 중국에선 인민의 적, 적인(敵人)에게는 공민권을 주지 않는다. 설마 우리가 ‘저쪽’ 국민은 목숨을 잃어도 상관없는 적인으로 여겼던 대통령을 두었던 것은 아니었다고 믿고 싶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