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7년 서울 관악구 봉천동 소천서사에서 동아일보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는 고 조순 전 경제부총리 2017/06/26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고인은 노태우 정부 시절(1988~1993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과 한국은행 총재를 지냈고, 김영삼 정부 때인 1995년 서울시장에 당선되면서 행정가로 변신했다. 시장 역임 후에는 민주당과 한나라당 총재로 정치에 입문했다. 교수와 정치인, 행정가, 관료 등 다양한 직책을 맡아 오며 대한민국의 역사와 굴곡을 함께 했다.
1928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난 고인은 경기고, 서울대 상대를 졸업했다. 육군사관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다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경제학 박사를 받고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정계에 발을 디딘 것은 1993년 당시 아태평화재단 김대중 이사장의 권유였다. 재단 자문위원을 맡아 활동한 고인은 이후 민주당에 입당해 서울시장 선거에 나섰다. 길고 흰 눈썹과 그 동안의 대쪽 행보가 강조되면서 ‘서울 포청천’ 별명을 얻었다.
1995년 첫 민선 서울시장에 당선됐고 첫 출근길에 종로구 혜화동 공관에서 시청까지 버스를 타는 등 ‘소통’을 강조했다. 취임 직전 벌어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를 수습한 이후 당산철교를 철거하고 재시공하는 등 ‘안전 서울’ 행정에 주력했다. 당시 아스팔트로 덮여있던 여의도광장을 나무가 우거진 여의도공원으로 조성한 것도 그의 아이디어였다.
시장 임기를 10개월여 남겨두고 통합민주당 대선 후보로 영입돼 대권에 도전했다. 하지만 국민회의 김대중, 자민련 김종필 후보 등에 비해 군소정당 후보로서의 한계에 부딪히자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와 전격 단일화하면서 대선은 완주하지 못했다. 대신 초대 한나라당 총재를 맡았다. 한나라당이라는 이름도 그가 직접 지은 것이다. 1998년 강원 강릉 재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돼 여의도에 입성했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민주국민당 대표로 총선을 지휘했지만 선거 참패 후 정계를 떠났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그의 길고 빽빽한 흰 눈썹과 번뜩이는 눈빛을 기억한다. 누군가는 그런 그를 일컬어 ‘백미(白眉·여러 사람 가운데 가장 뛰어난 사람)’라고 했고, 판관포청천이라는 대만 드라마가 한창 인기일 때는 ‘서울 포청천’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다. 하얀 눈썹을 휘날리며 산행을 즐겼던 탓에 ‘산신령’이라고도 했다. 그는 산신령이라는 별명을 가장 좋아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남희 씨(92)와 장남 기송, 준, 건, 승주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 아산병원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5일이다.
세종=최혜령 기자 herstor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