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estion & Change]〈17〉신동윤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 대표
대전 서구 대덕대로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 사무실에서 신동윤 대표가 이 회사의 로켓 엔진 모형 앞에 서서 웃고 있다. 대전=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신동윤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 대표(25)를 만나기 전, 그 회사 임원에게 물었다. “대표님은 어떤 분인가요?” 돌아온 답은 이랬다. “로켓에 진심이십니다.”
대전 서구 대덕대로에 있는 이 회사 사무실에서 신 대표를 만나자마자 당시의 대화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이름 밑에는 ‘비히클(운송수단) 엔지니어’, 회사 주소는 행정구역이 아닌 지구상의 위도 경도(36.3724○N, 127.4146○E, Earth)가 쓰여 있었다.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Ⅱ)가 21일 발사에 성공하면서 ‘넥스트 누리호’ 시대를 맞는 우주 스타트업들에 기대가 모아진다. 소형 발사체(로켓)를 만드는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가 대표적이다. 신 대표는 “국가에서 발사체를 만들어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줘 우리 같은 민간기업에 큰 힘이 된다”고 했다. “발사 성공 압박이 큰 한국항공우주연구원분들에게 그동안 같이 개발하자고 말하기 어려웠거든요. 이제 선배 엔지니어들을 찾아가 배우고 싶어요.”
○ ‘이상한 사람들’이 이끈 ‘로켓 덕후’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가 개발 중인 소형 발사체 ‘블루 웨일’(‘푸른 고래’라는 뜻)은 길이 8.8m, 무게는 2t 미만이다. 2024년까지 50kg 이내의 인공위성을 탑재해 500km 태양동기궤도로 ‘운송’시키겠다는 목표의 ‘우주 모빌리티’다. 소형 발사체는 대형 발사체보다 발사 비용이 훨씬 저렴하고 제작 기간도 짧다. 글로벌 조사기관인 리서치앤드마켓에 따르면 소형 발사체 시장 규모는 올해 13억2200만 달러(약 1조7200억 원)에서 2032년 46억2400만 달러(약 6조 원)로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두 번째 이상한 사람들은 부모였다. “어머니 권유로 어린이천문대로 별을 보러 다녔는데 그게 그렇게 좋았어요. 각종 실험도구를 사다가 아파트 베란다에서 발열 반응을 연구했고요. 매미와 잠자리의 날개를 붙여둔 종합장은 아직도 갖고 있어요. 부모님은 ‘하고 싶은 걸 해라, 하기 싫은 건 하지 마라’고 하셨어요.”
세 번째는 선생님들. 중3 때이던 2012년 금성이 태양면을 통과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아마추어 로켓단체를 만들어 활동하던 신 대표는 자신의 망원경을 학교 과학 선생님들의 용인하에 교문 앞에 갖다놓고 거의 모든 전교생이 이 현상을 지켜보도록 했다. 로켓단체와 인터넷 천문 동아리에서 의기투합했던 ‘이상한’ 친구들이 훗날 창업의 동지들이 됐다.
○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다”
신 대표는 캐나다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외환위기 시절 해체된 국내 대기업을 다녔던 아버지가 이민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신 대표는 워털루대에 입학해 두 달 다닌 뒤 그만뒀다. 고교 때 한국의 친구들과 원격으로 소프트웨어 개발 프로그램을 개발해 2억 원 넘게 돈을 벌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하고 싶은 일은 로켓 개발이었다. “가만히 있는데 돈이 들어오는 건 제 취향이 아니었어요. 전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한 달에 두 번 주말에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와서 로켓 개발을 점검했다. 결국 홀로 귀국해 친구들이 봐둔 대전의 작업실에서 1년 동안 먹고 자며 매달려 2016년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를 설립했다. ‘고졸보다는 대학을 다녀보는 게 어떨까’ 생각하다가 KAIST에 들어갔다. 신 대표처럼 다양한 도전 경험이 있는 학생을 선발하는 특기자 전형을 통해서다. 트럼펫 연주가 취미인 '이상한 교수님'인 권세진 KAIST 인공위성연구소장은 학생 사업가인 신 대표에게 지식을 아낌없이 나눠주었다고 한다. 한국 최초의 인공위성 '우리별 1호' 발사 주역인 박성동 쎄트랙아이 의장도 든든한 힘이 돼 주었다.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는 지금까지 270억 원이 넘는 투자를 유치했다.
○ “사람도, 국가도 비전이 있어야 한다”
신 대표는 누리호 2차 발사 이전 레벨센서 문제가 발견된 것에 대해 “충분히 생길 수 있는 일”이라며 “로켓의 복잡성을 눈으로 확인하면 발사체 성공은 기적 같은 일”이라고 했다.우주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신 대표는 “뜬구름 잡는 소리 한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거대한 비전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우리의 비전이 무엇인지 선포해야 해요.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이 ‘달에 가겠다’고 했던 건, 기술력이 강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죠.”
“주변에 살아갈 이유를 못 찾아 ‘현타’(현실자각 타임)인 사람들이 많아요. 밤하늘의 별들을 보고 있으면 지구는 참 아름다운 곳이에요. 남 시선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집중하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어요.”
신 대표는 스페이스X가 팰컨 로켓을 쏠 때 미 플로리다주 케네디우주센터에 간 적이 있다. 미 전역에서 온 스쿨버스가 해변가에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 “아버지의 목말을 타고 로켓 발사를 지켜보는 아이들이 행복해 보였어요. 우주 탐사는 절대로 돈 낭비가 아니에요. 미래세대에 대한 투자이죠.”
그는 ‘왜 소형 발사체인가’라는 질문에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중 가장 멋진 일”이라며 “큰 걸 하겠다고 실패만 하는 것도 무모한 일이기 때문에 차근차근 경험을 쌓아 언젠가는 유인 우주선을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사명에 담긴 ‘페리지’의 의미: 달·행성이 지구에 가장 가까워지는 지점. ‘우리가 우주의 초입’, ‘가장 가까운 별에 도달하고 싶은 열망’,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의미들을 담았다.
대전=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