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상선 빅토리호 기관사 스미스 씨, 72년前 부모에 보낸 편지 공개 “피란민 밀려와… 1만4000명 태워 난방 안된 채 물-화장실 없이 견뎌… 처참한 상황서 한국인 강인함 놀라”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기관사였던 멀 스미스 전 미국 해군 예비역 소장이 철수를 끝낸 후 미 본토에 있는 가족에게 안부를 전한 편지를 다시 읽고 있다. 한국전쟁유업재단 제공
“절대 잊지 못할 크리스마스를 보냈어요. 흥남에서 배에 태운 한국인 1만4000명을 거제에 내려주고 있어요. 화물선이라 앉을 곳도, 화장실도 없는데…. (3일간의 항해 동안) 아기 5명이 태어났어요. 배에서 죽은 아이들은 부모들이 바다로 던졌고요.”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2월 흥남철수작전에 투입됐던 미국 민간 상선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3등 기관사 멀 스미스 씨(94)는 당시 부모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22일(현지 시간) 한국전쟁유업재단에 따르면 스미스 씨는 재단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배 안에 있던 한국인들은 물과 음식을 애타게 필요로 했지만 우리도 가진 게 얼마 없어 아이들 위주로 줘야 했다. 나눠줄 초코바가 조금만 더 있었으면 했다”며 더 돕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했다. 플로리다에 사는 그는 현재 생존해 있는 메러디스 빅토리호 선원 두 명 중 한 명이다.
“피란민들이 끝도 없이 밀려왔습니다. 1만4000명을 태웠죠. 우리 배는 선원이 48명밖에 없었고 물, 음식도 50인분 정도밖에 없었어요. 한국인들은 나흘간 물도, 음식도, 화장실도 없이 견뎌야 했습니다. 한겨울인데 난방도 안 됐고…. 상상이 되나요?”
당시 스미스 씨는 상선에서 기관사로 일을 막 시작한 신참이었다. 그가 탄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물자를 날랐다. 인천상륙작전이 시작되자 민간 상선들은 미군 물자 수송에 투입됐다. 미군 사령관은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중공군이 남하하고 있으니 군인과 민간인의 철수를 도와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스미스 씨는 당시 철수작전을 성공적으로 마친 뒤 가족에게 쓴 크리스마스 편지를 낭독하며 재단과의 인터뷰를 마쳤다. ‘사람들을 태우러 흥남부두에 갔을 때 한 아버지가 칼에 찔린 딸을 땅에 묻지 못해 두 손에 시신을 든 채 쩔쩔매고 있었어요. 그분이 배에 잘 타셨는지 모르겠네요. 모든 분이 안전하게 탈출했기를 바랄 뿐이에요.’
임보미 기자 b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