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빵·치킨·라면…2주간 ‘밀가루 끊기’ 직접 해보니 [헬!린지]

입력 | 2022-06-25 16:00:00

시판 반찬재료나 조미료에도 밀가루 첨가돼
면 요리가 생각날 때는…두부면·곤약면 등으로 대체
전문가 “밀가루 음식, 다른 영양소도 함께 섭취해야”



매일 오전 9시만 되면 한줌씩 가져오던 탕비실 과자(왼쪽)·밀가루 끊기 전 배달 앱 주문 내역.


‘빵, 치킨, 라면? 뭘 먹어야 하지…’

인생의 마지막 음식이라도 택하는 듯 신중했다. 유명 빵집이나 카페 디저트를 찾아다니는 기자에게 ‘밀가루 끊기’ 도전은 엄청난 결정이었다. 도전에 앞서 마지막으로 먹을 밀가루 음식을 고르는 일조차 비장했다. 고심 끝에 선택한 음식은 바로 ‘딸기 케이크’. 저녁 식사를 끝낸 후 간식으로 오후 11시 45분까지 케이크 반 판(3조각)을 먹어치우곤 5월 30일 0시부터 2주간 밀가루 끊기에 돌입했다.
탕비실·카페·배달 앱…곳곳이 밀가루 지뢰밭
하루 ‘먹패턴’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2주를 참는 게 가능할까 싶었다. 끼니를 제외하고도 밀가루를 입에 달고 있었기 때문이다. 간식으로 과자나 빵류를, 퇴근 후 혹은 휴일에는 치킨·떡볶이·튀김·피자 등을 즐겨먹었다. 이전에는 단비 같던 탕비실 과자가 야속하게 느껴졌다. 회사 인근에 위치한 편의점과 카페, 휴대전화에 깔린 배달 애플리케이션(앱) 등 곳곳이 무조건 피해야하는 ‘밀가루 지뢰밭’이 됐다.

식사 시간에는 밀가루가 들어간 ‘의외의 음식’을 골라내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웠다. 국수나 튀김 등은 밀가루 음식임을 비교적 쉽게 알아차렸다. 반면 맛살·어묵·햄 등은 사전에 미리 알아보지 않았다면 밀가루가 들어갔음을 인지하지 못했을 것. 하물며 대부분의 시판 고추장과 된장 등 조미료에도 밀가루는 첨가됐다. (다만 이번 도전에서는 반찬에 들어간 소량의 조미료까지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루는 마트에서 산 카레를 데워먹기 위해 꺼냈다가 놀라기도 했다. 제품 한쪽에 쓰인 재료를 살펴보니, ‘밀가루’가 들어있던 것이다. 자세히 보지 않았다면 고스란히 실패로 돌아갈 뻔했다. 카페에서 점심을 해결할 때는 샌드위치를 선택할 수 없어 닭가슴살이나 두부 샐러드를 집어들었다. 퇴근할 때는 습관적으로 배달 앱을 열었다. 매일 다양한 브랜드의 치킨집과 빵집이 ‘4000원 할인’이라는 문구로 유혹했다.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향하는 길에도 호떡과 만두가게를 못 본 척 지나야 했다.

매번 신중하게 살핀다고는 했지만, 실수는 있었다. 남편이 식탁 위에 펼쳐놓은 과자 봉지를 향해 생각 없이 손을 뻗은 것이다. 과자를 입에 넣는 순간 ‘아차!’ 싶었다. 결국 과자 하나를 입에 물었다 독약이라도 먹은 듯 뱉어냈다.
“무작정 끊기보다는…” 대체 식품 적절히 활용

(시계 방향으로) 두부면 파스타·두부 샐러드·글루텐프리 쿠키.


이렇게 무작정 끊기만 하다가는 뒷감당이 두려웠다. 체험이 끝난 후 밀가루 음식으로 폭식할 것이 눈에 훤했다. 차라리 대체 식품을 찾기로 했다. 파스타가 간절하게 먹고싶던 날에는 두부면을 이용한 알리오 에 올리오를 해먹었다. 밀가루 끊기나 키토제닉 다이어트를 진행하는 이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에는 두부면으로 라면을 끓여 먹었다는 이들도 있었다. 파스타면 대신 곤약면으로 대체한 레시피도 눈에 띄었다.

쿠키 등 디저트도 밀가루 없이 만든 제품이 있다. 이른바 ‘글루텐프리’ 식품이다. 글루텐은 밀이나 보리 등에 함유돼 있는 불용성 단백질이다. 밀가루 음식을 먹고 난 후 복통 등의 증상이 나타나면 글루텐에 민감할 가능성이 높다. 과거 이 식품은 밀가루 알레르기가 있거나 자가면역질환자 등이 주로 찾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글루텐이 없으면 ‘건강에 좋다’는 인식이 커지면서 관련 질환이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인기다. 마켓컬리에 따르면 지난해 글루텐프리 식품 판매량은 전년 대비 약 7% 증가했다.

강재헌 강북삼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두부면은 탄수화물보다는 단백질로 섭취하는 것이 크기 때문에 (영양) 균형에 맞는 좋은 선택”이라고 했다. 다만 글루텐프리 식품으로 대체하는 것에 대해선 “식품 알레르기 원인이 되는 글루텐을 제거할 뿐”이라며 “밀가루가 주식이 아닌 우리나라에서 글루텐 알레르기 문제는 상대적으로 덜하다. (다른 영양소 섭취 없이) 글루텐프리 식품만 먹는다면 좋은 대안은 아니다”고 했다.
전문가의 조언 “밀가루 음식, 끊을 필요까진 없고…”

밀가루 음식을 먹을 때는 꼭 다른 영양소도 챙겨드세요. ⓒ게티이미지뱅크


당초 밀가루 끊기를 시작하면서 기대했던 것은 △속 편함 △뱃살 줄이기 등이다. 일부는 효과가 비교적 빠르게 나타났다. 빵이나 라면, 피자 등을 섭취하면 종종 소화가 안 되는 날도 있었다. 하지만 아예 먹지 않으니 그럴 일이 없었다. 밀가루를 끊은 지 엿새 만에는 거울 속에 비친 얼굴에서 매끈한 피부결을 마주했다. 실제로 아토피 환자 등이 모인 관련 카페에는 밀가루를 끊고 난 후 아토피가 일부 완화됐다는 후기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다만 뱃살은 쉽게 빠지지 않았다. 일주일이 넘도록 그대로였다. ‘이건 나잇살이구나’라며 포기하던 즈음, 손에 잡히던 뱃살이 줄었음을 느꼈다. 밀가루 끊기 11일차였다. 물론 고작 2주 만에 뱃살이 드라마틱하게 줄어든 것은 아니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임산부로 오해받아 두어 번 자리를 양보 받았지만, 이제는 민망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을 만큼 뱃살이 실종됐다고 표현하면 적당할 것 같다.

물론 밀가루 음식을 꼭 끊을 필요는 없다고 전문가는 강조했다. 강재헌 교수는 “한국인이 밀가루 음식을 먹을 때 밀가루만 먹는 게 안 좋다는 것”이라며 “다른 영양소와 균형을 맞춰먹으면 문제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도 밥을 먹을 때 반찬을 함께 먹듯 서양도 빵이 메인 음식이기보다 야채·고기·생선 등과 곁들어 먹는다”며 “밀가루만 먹으면 단백질·식이섬유·비타민·미네랄 등이 부족하다는 것”이라고 했다.

조혜선 동아닷컴 기자 hs87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