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 아파트’ 우려엔 “시민에 바가지 씌우란 말인가”
김헌동 서울주택도시공사(SH) 사장. 지호영 기자
지난해 11월 취임한 김헌동 서울주택도시공사(SH) 사장이 밝힌 서울 집값 안정에 대한 구상이다. 서울 아파트 평균 가격이 12억 원을 훌쩍 넘은 시대에 이보다 수억 원 낮은 가격에 아파트를 공급할 수 있다는 게 선뜻 믿기지 않을 수 있지만, SH가 보유한 토지를 사용해 ‘가격 거품’을 없애면 충분히 가능한 정책이라는 게 김 사장의 설명이다. 김 사장은 약 20년간 민간 건설사에서 일하다 ‘아파트 값 거품 빼기’의 필요성을 절감해 시민운동에 투신한 뒤 20년간 활동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부동산건설개혁본부장으로서 부동산 실정(失政)을 여러 차례 비판한 바 있다.
“SH 주인인 서울시민이 공기업 자산 알 수 있어야”
지난해 11월 오세훈 서울시장이 SH 사장으로 임명한 그의 일성(一聲)은 ‘토지임대부 주택’(반값 아파트) 공급이었다. 구체적인 실현 방식에 세간의 이목이 쏠린 가운데 SH는 3월 7일 홈페이지를 통해 공기업 최초로 건물·토지 등 보유 자산을 공개하기 시작했다. 장기전세주택 2만8282채를 시작으로 공공주택 10만1998채의 취득가격과 공시가격, 추정시세를 누구나 확인할 수 있게 밝힌 것이다. 김 사장은 “부동산 개발 정책에 생긴 부패의 틈은 집값 거품으로 나타나고 불법 투기로 이어져 결국 국민 모두에게 피해를 준다”고 말했다. 지방선거에서 4선 고지에 오른 오 시장의 주택 정책을 뒷받침하는 김 사장에게 실제로 낮은 가격에 아파트를 분양할 수 있을지 등 정책 비전을 물었다.
“오 시장이 공급한 20년 장기전세주택 2만8282채의 토지비와 건축비 등을 합한 장부가액은 6조2293억 원이었는데 공시가격(재산세 기준)은 16조5041억 원, 추정시세는 32조1067억 원이었다. 장부와 실제 자산 가치에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직원 1500명조차 SH 재산이 얼마인지 정확히 모르는 실정이었다. SH가 얼마만큼 가치와 강점이 있는지 알릴 필요가 있다고 봤다. 전체 국가부채가 어느 정도 규모인지는 이따금 알려지지만 공기업 자산이나 부채는 대체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SH의 주인인 서울시민이 SH 자산이 얼마인지 알 수 있도록 공기업 최초로 자발적으로 보유 자산을 공개한 것이다.”
내부 반대는 없었나.
“공기업 직원도 사람이기에 통계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오류가 생길 수 있다. 그런데 통계를 공개해 검증받을 기회가 없다면 오류를 발견하기 쉽지 않다. 자칫 통계의 작은 흠으로 임직원에게 불이익이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불식하고자 차근차근 공개하고 있다. 이런 정보 공개가 불편하고 불리한 것이 아니라 임직원과 SH, 더 나아가 서울시민에게 이롭다는 사실이 사내에 점차 확산되고 있다.”
분양 원가도 함께 공개해 주목받았다.
“SH가 어떻게 토지를 확보해 어느 정도 가격에 아파트를 지었으며 분양으로 얼마나 이익을 남겼는지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은 당연하다. SH가 2014년 분양한 서울 강남구 세곡동(세곡2지구) 아파트는 25평형(85㎡) 규모 아파트를 짓는 데 채당 땅값 1억2000만 원, 건축비 1억5000만 원을 합쳐 총 2억7000만 원이 들었다. 이 아파트를 4억 원에 분양해 SH는 약 30% 이익을 남겼다. 이처럼 SH가 아파트를 지을 때 들인 토지비와 건축비, 분양 원가를 공개하면 사람들은 ‘서울에 25평형 규모 아파트를 짓는 비용이 그 정도밖에 안 드는구나’ 생각을 할 것이다. 그러면 왜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이보다 높은 가격에 분양하는지 자연스레 의문이 들 것이다. 이 같은 여론이 조성되면 LH를 비롯해 전국 지방자치단체 산하 도시·주택 개발 관련 공기업들이 투명하게 아파트 분양 원가를 공개할 가능성이 높다.”
“토지임대부 분양, 건축물 품질도 높여”
SH가 분양 원가를 공개한 서울 강남구 세곡2지구 아파트. SH 제공
“건설사가 토지를 사고 건물까지 올리려면 비용 부담이 적잖다. 토지와 건물 소유권을 분리하면 건축 자체에만 집중할 수 있어 건축물 품질을 크게 높일 수 있다. 아파트 품질을 제고해 집값 거품을 빼면서도 좋은 집을 짓는 것이다. 향후 재건축·재개발로 새집을 짓거나 3기 신도시에 신축 아파트를 조성할 때 30년 정도 갈 건물이 돼선 안 된다. 앞으로 100년 이상 부술 필요 없는 튼튼한 집을 지어야 한다.”
“난 그런 얘기를 한 적도 없는데…. 공기업의 분양 원가 공개가 민간 시장에 굉장히 큰 악영향을 미칠 것처럼 말하는 이들도 있었으나, 이내 그런 얘기가 사라졌다. 앞서 말한 것처럼 SH가 분양 원가를 공개해 공기업이 일정 정도 이익을 보면서도 저렴한 가격에 아파트를 분양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어떤 효과가 있겠나. 시민들이 ‘SH가 서울에 지은 아파트가 저 정도 가격인데 경기도의 같은 규모 아파트를 10억 원에 사도 될까’라는 의문을 갖지 않겠나. 공공 영역에서 분양가 공개가 확대되면 시민에게 좋은 참고가 되리라 생각한다.”
토지·건물 소유권을 분리한 전례가 있나.
“물론이다. 미국 뉴욕 맨해튼 옛 세계무역센터 부지에 들어선 ‘원월드트레이드센터(1WTC)’는 토지 임대 형식으로 지은 건물이다(부지 소유자인 뉴욕 뉴저지항만청이 부동산개발사 측에 장기임대). 여의도 IFC(국제금융센터)도 서울시가 보유한 토지를 개발사 측에 99년간 임대하는 조건으로 건설됐다. 토지는 공공이 보유하되 민간에 임대해 임대료를 받고, 민간은 그 땅에 건물을 지어 마음껏 사용하면 된다.”
분양받은 반값 아파트가 시세 폭등으로 ‘로또 아파트’가 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런 지적엔 동의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른바 ‘로또 아파트’가 될 것을 우려해 공기업이 시민에게 높은 분양가를 책정하란 말인가. 분양가를 너무 높게 잡아 신청조차 못하게 하는 것이 옳겠는가. 미래의 시세 차익을 줄인다는 명목으로 공기업이 시민에게 바가지를 씌워선 안 된다.”
“100년 이상 가는 튼튼한 집 지을 것”
인터뷰를 하면서 주로 집값 안정과 투명화 복안에 대해 묻고 답하던 가운데 김 사장은 “시민운동가로서 아파트 값 거품을 잡는 활동을 오랫동안 했지만 시민운동을 시작한 이유는 대한민국 건축물의 품질을 높여보자는 의도에서였다”면서 SH가 공급하는 주택의 품질 제고에도 의욕을 내비쳤다. 김 사장이 자신이 구상하는 반값 아파트를 가칭 ‘백년주택’으로 명명한 것도 저렴한 분양가 못지않게 건축물로서 가치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그의 설명이다.
“기존에 SH가 지은 일부 주택도 노후화돼 재건축이 필요하다. 이제까지 건축물 수명이 30년에서 50년 정도였다면, 앞으로 SH는 100년 이상 가는 튼튼한 집을 뜻하는 ‘백년주택’이라는 브랜드로 반값 아파트를 짓고자 한다. 주택 품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대한민국이 건설강국으로 거듭나는 데 일조하고 싶다. 시민운동가 때처럼 제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기업 사장으로서 구체적 방식을 검증해 실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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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주간동아 1345호에 실렸습니다〉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