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심판 2024년 1군 도입 추진
강동웅 스포츠부 기자
《“야 이 ○○○야, 판정 똑바로 해!”
롯데와 LG의 프로야구 경기가 열린 4월 29일 서울 잠실구장. 관중석에서 이런 고함이 들려왔다. 비난 대상은 10년 차 김선수 한국야구위원회(KBO) 심판(38)이었다. 김 심판은 “(판정 후 비난에 대한) 중압과 압박이 심하다. 상처도 많이 받는다. TV로 경기를 볼 때도 관중들이 동료 심판에게 욕하는 걸 들으면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말했다. 김 심판은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로 지난해부터 심리 상담을 받고 있다.
그에게는 소망이 하나 있다. ‘로봇 심판’ 도입이다. 김 심판은 “처음 비디오 판독을 도입할 때만 해도 기계가 경기에 개입하는 데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시스템이 자리를 잡은 지금은 영상을 통해 내가 보지 못한 장면을 확인할 수 있어 좋다는 생각이 든다”며 “스트라이크 판정에서도 로봇 심판 도움을 받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 ‘인간 심판’을 향해 커가는 불신
제일 큰 이유는 TV 중계 확대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투구추적시스템(PTS) 도입이다. KBO의 한 관계자는 “모든 경기를 TV로 볼 수 없고, 다시보기도 불가능했던 시절에 심판의 판정에 의문을 갖는 경우는 드물었다”면서 “TV와 비디오 판독 등 야구장에 기계가 도입된 이후 상황이 급변했다. 팬뿐 아니라 선수단에서도 ‘심판이 틀렸고 내가 맞을 수 있다’는 생각이 확산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특히 ‘스트라이크 존 정상화’를 강조하기 시작한 올해는 더 많아졌다. 선수단의 스트라이크 판정 항의가 현장에서 퇴장으로 이어진 경우는 2017년부터 2020년까지 매해 1, 2회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난해 이 부문 퇴장 횟수가 4회로 늘었고 올해는 전반기 일정을 끝마치지도 않았는데 벌써 6차례 퇴장이 나왔다.
심판도 본인 판정에 찜찜함이 남는다. KBO 소속 A 심판은 “하루에 많으면 300개의 공을 보는데 솔직히 경기마다 7, 8개의 공은 실수를 할 수밖에 없다”며 “결정적인 순간에 내린 판정이 마음에 걸리면 경기가 끝나고 나서도 ‘내가 그 공을 잘 못 봐서 이런 결과가 나왔나’ 하고 자책하곤 한다”고 털어놨다.
인간 심판에 대한 불신은 로봇 심판에 대한 신뢰로 이어진다. 지난해 한국스포츠산업경영학회지에 실린 논문 ‘로봇 심판 도입이 야구팬들이 인식하는 판정에 대한 공정성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미국 거주 야구팬 14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로봇 심판 판정에 대한 신뢰도는 7점 만점에 5.27점으로 인간 심판(4.83점)보다 높았다.
○ 로봇·인간이 함께 만들어가는 판정 권위
KBO는 2020년부터 2군에서 투구자동판정시스템(ABS)을 시범 운영하고 있다. 올해도 시스템 운영 업체 선정이 끝나는 대로 마산 이천 함평 등 세 곳에서 이 시스템을 활용할 예정이다. KBO는 홈플레이트 위 3차원으로 된 스트라이크 존 어디든 공이 스치면 스트라이크 판정이 나오는 이 시스템을 구축했다. ABS는 선수들 타격 자세까지 감안해 타자별 스트라이크 존 높낮이를 결정한다.
퓨처스리그(2군)에 로봇 심판을 처음 도입한 2020년 8월 5일 경기를 앞두고 구심을 맡은 정은재 심판(오른쪽)이 판정을 전달받을 장비를 착용하고 있다. 뉴스1
기술적인 문제뿐 아니라 토론과 합의가 필요한 부분도 있다. 송재우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스트라이크 존에 대한 규정과 별개로 그간 스트라이크 존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타자가 타석에서 칠 수 있는 공’이었다. 타자가 정말 치기 어렵게 들어온 공도 스트라이크 존에 살짝 걸쳤다면 로봇 심판은 스트라이크로 판정할 것이다.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지 선수단부터 심판과 야구팬까지 합의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KBO는 이르면 2024년 1군 무대에 로봇 심판을 도입할 방침이다. 이때까지 기술 문제가 완전히 보완된다 해도 로봇 심판이 인간 심판을 아예 대체하기는 쉽지 않다. 인간 심판들도 이를 알기에 도우미 역할을 하는 로봇 심판을 적극 환영하고 있다. 훼손된 판정의 권위는 인간과 로봇 심판이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강동웅 스포츠부 기자 lep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