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는 충격적인 일을 겪은 당사자에게만 발생할 것 같지만 세대를 뛰어넘어 물려지기도 한다. 조경란 작가의 ‘복어’는 그러한 트라우마에 관한 사유로 가득한 소설이다.
할머니가 선택한 죽음이 소설의 한복판에 있다. 서른 살이었던 할머니는 복엇국을 끓여 자기 것에만 독을 넣어 먹고 죽었다. 그 모습을 밥상머리에서 지켜본 그녀의 남편과 어린 아들이 받은 충격은 상상을 초월한다. 문제는 그것이 두 사람에게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 자리에 있던 어린 아들이 훗날 낳은 딸(주인공)은 어느 날 우연히 그 얘기를 엿듣게 된다. 생긴 것도 하는 짓도 자신이 할머니를 닮았다는 얘기까지. 그녀가 누군가 자신을 “따라다닌다고 느끼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다. 일종의 정신분열.
얼핏 생각하면 말이 안 된다. 나중에 태어난 손녀까지 트라우마를 입는다는 것은 너무 비논리적이다. 그러나 비논리가 현실인 것을 어쩌랴. 트라우마가 무서운 것은 그러한 비논리 때문이다. 자살한 이유가 무엇인지는 손녀에게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다. 할머니가 택한 극단적인 죽음의 방식에 그저 압도당할 뿐이다. 그녀는 거의 병적으로 할머니를 생각하고 같은 방식의 자살을 생각하게 된다. 할머니처럼 복어로.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