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강소공대를 가다] 〈하〉강소공대가 도시를 살린다
마티아스 볼프 오키나와과학기술대학원대(OIST) 교수가 분자를 영하 200도 이하로 냉각시켜 정밀하게 관찰할 수 있는 극저온 전자현미경을 소개하고 있다(위쪽 사진). 오키나와 앞바다가 보이는 숲속에 자리한 OIST 캠퍼스 전경. 온나촌=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OIST 제공
일본 오키나와현 중부 온나촌(村). 오키나와의 관문인 나하공항에서 북쪽으로 1시간가량 차를 타고 가면 투명한 산호빛 바다와 리조트 등이 펼쳐진 작은 마을이 나온다. 숲속으로 올라가면 바다를 향해 야트막한 4개의 건물이 보인다. 일본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과학기술 연구 대학인 오키나와과학기술대학원대학(OIST)이다.
OIST는 일본 정부가 ‘과학기술 입국’과 ‘오키나와 지역 경제 진흥’이라는 양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2011년 정책적 결정으로 설립한 대학이다. 일본에서 1인당 소득이 가장 낮은 곳으로 평가되는 오키나와의 경제를 부흥시키겠다는 게 대학 설립의 가장 큰 목적이다. 헤더 영 OIST 부학장은 “기초과학을 바탕으로 연구, 교육, 혁신을 하나로 연결해 지역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연구에 적극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작지만 강한 세계의 공대들은 이렇게 지역 경제 부활의 거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지역에 유명한 대기업이 없어도 대학의 연구자들이 네트워크를 가동해 외부에서 투자금을 끌어오고, 이 자금을 바탕으로 지역이 강점을 지닌 산업을 키운다.
○ ‘산업 불모지’ 오키나와에서 벤처기업 요람
유명한 대기업이 없는 오키나와에서 OIST는 최근 벤처기업의 요람 역할을 하고 있다. OIST는 지난달 요코하마에 본사를 둔 벤처 캐피털 업체 ‘라이프타임 벤처스’와 함께 50억 엔(약 500억 원) 규모의 펀드를 설립했다. 헬스케어, 환경, 기술, 해양 등 오키나와가 강점을 갖고 있는 분야에 투자를 한다. 라이프타임 벤처스 측은 “OIST 캠퍼스에 거점을 두고 대학 내 연구자들과 제휴하면서 다양한 기술과 아이디어를 시장에 소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의 일본 반환 50주년을 맞아 올해 5월 발표한 ‘오키나와 진흥 기본 방침’에서 OIST를 지역의 산업 경쟁력과 기술혁신 창출을 도모하는 핵심 기지로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지난달 오키나와 일본 반환 50주년 기념식에서 “OIST는 내가 담당 장관으로 창설에 깊이 관여한 곳”이라며 “양자, 바이오 등 폭넓은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 연구를 추진하고 성과가 사회에 환원되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 학생 200여 명의 ‘글로벌 톱10’ 연구기관
오스트리아 출신인 마티아스 볼프 교수는 10년 전인 2012년 미국 하버드대에서 OIST로 옮겨와 교수를 맡고 있다. 볼프 교수는 생체분자 구조를 극저온으로 처리해 전자현미경으로 분석하는 연구를 한다. 볼프 교수는 “학교 규모는 작지만 다른 학교에 으레 있는 학과 간 장벽이 없이 자유롭고 폭넓게 연구할 수 있다는 게 이곳의 장점”이라고 말했다.OIST는 교수 82명, 석·박사 통합과정 학생 205명이 모인 작은 대학이다. 하지만 연구 수준은 세계적이다. 2019년 네이처지가 선정한 ‘질 높은 연구기관’ 순위에서 세계 9위, 일본 1위에 올랐다. 역사가 11년에 불과한 대학이 도쿄대, 교토대 등 100년 이상 역사를 자랑하며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유명 대학들을 전부 제치면서 일본에서 단숨에 주목받는 대학이 됐다.
대학은 ‘기존 대학과는 달라야 한다’는 목표 아래 교수로 부임하면 5년간 조건을 달지 않고 연구비를 지원한다. 정부도 낙후된 지역에 대한 정책적 배려 차원에서 연간 160억 엔(약 1600억 원)의 대학 연구비를 직접 지원한다.
온나촌=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