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핵냉전의 최전선 발트해를 가다… ‘핵전쟁 공포’ 리투아니아 르포 인구 2000명 발트해 휴양도시, 북적이던 관광객 발길 끊겨
러 핵전폭기로 우크라 쇼핑몰 폭격… 최소 18명 숨져 27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 중부 폴타바주 크레멘추크의 한 쇼핑몰이 핵미사일 탑재가 가능한 러시아군의 전략폭격기에서 발사한 순항미사일 공격을 받아 화염과 시커먼 연기로 뒤덮였다. 당시 쇼핑몰에 있던 1000여 명 중 최소 18명이 숨지고 60여 명이 다쳤다. 사상자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날 미사일 공격은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직후, 29일 예정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직전에 벌어졌다. 크레멘추크=AP 뉴시스
니다·빌뉴스·파브라데=김윤종 특파원
21일(현지 시간) 러시아 역외영토인 칼리닌그라드로 이어지는 리투아니아 국경 도시 니다에서 만난 로마 씨(40)는 “발트해가 신(新)냉전의 최전선이 되면서 국경이 막혔다”고 토로했다. 서방은 러시아가 이곳에서 불과 90km 떨어진 칼리닌그라드에 핵무기를 배치한 것으로 보고 있다. 러시아는 29, 30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주요 의제인 스웨덴, 핀란드의 나토 가입이 현실화되면 핵미사일을 배치하겠다고 28일 공개적으로 위협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27일 발트해와 동유럽 일대에서 러시아에 즉각 대응할 수 있는 병력을 현재 4만 명 규모에서 7.5배 이상 늘어난 “30만 명 이상으로 증강하겠다”고 밝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노골적 핵위협이 핵전쟁 문턱을 낮춰 핵공포를 확산시키고 나토가 병력·군비 증강으로 맞서는 ‘신(新)핵냉전’ 시대가 온 것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핵무기와 군비 지출을 억제하던 탈냉전 시대에 역사적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나토군 훈련 잦아진 리투아니아… 시민들 “현대판 서베를린” 불안감
[오늘 나토 정상회의]‘핵전쟁 공포’ 리투아니아 르포
주민들 “러의 다음 타깃은 발트해” 리투아니아, 미군 영구 주둔 요구
나토, 동유럽 병력 8배로 증강 발표… 러 “크림반도 침범땐 3차 대전”
“괜히 힘 빼지 말고 돌아가십시오. 지금 탱크 오가는 거 안 보입니까?”
20일(현지 시간)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 인근 파브라데에 있는 군사시설 ‘헤르쿠스 실전훈련 캠프’ 입구에서 군용 트럭이 진입을 기다리고 있다. 파브라데=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20일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서 약 48km 떨어진 소도시 파브라데. 탱크와 장갑차 4대가 지난해 8월 운영을 시작한 군사시설 헤르쿠스 실전훈련 캠프에 연이어 진입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군이 훈련을 벌이는 곳이다. 캠프 입구에서 보초를 서던 리투아니아군 디아노스 씨는 기자에게 “요즘처럼 긴장이 고조된 시기에 (나토군과 함께) 훈련하는 장소를 공개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러시아는 최근 리투아니아가 자국을 거쳐 발트해 연안 러시아 역외영토 칼리닌그라드로 가는 철도 화물열차의 운송 제한 조치를 내리자 군사 보복을 경고했다. 리투아니아 정부는 발트해 연안에 나토군 소속 미군의 영구 주둔을 요구하고 나섰다.
○ 리투아니아, 연일 나토군과 연합훈련
러시아 발트해 역외 영토 칼라닌그라드에 있는 핵무기 벙커로 추정되는 위성사진 자료: 미국과학자연맹(FAS)
나토 정상회의를 앞두고 발트해 연안은 ‘신(新)핵냉전’의 최전선이 됐다. 군사 긴장이 더욱 고조되면서 리투아니아에서 나토군과 연합훈련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기자가 만난 빌뉴스 시민들은 최근 수도권 일대에서 군 훈련이 잦아졌다고 전했다. 이들은 리투아니아 정부가 10∼12일 “갑작스러운 미사일, 전투기 소리에 놀라지 말 것. 나토군 훈련 중”이란 ‘훈련 고지 문자’를 재난경보처럼 수도권 시민들에게 전송했다고 전했다.
○ “러의 다음 타깃은 발트해”
나토 정상회의에서 스웨덴과 핀란드의 나토 가입이 확정될 경우 러시아를 제외한 발트해 연안 8개 국가가 모두 나토 소속 국가가 된다. 발트해가 ‘나토의 내해(內海)’가 되는 셈이다. 뉴욕타임스는 “(이에) 푸틴 대통령이 나토의 결의를 시험하려 하면 발트 연안 국가들 침공이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등 서방은 나토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군사 개입을 확대하는 것을 막기 위해 러시아가 발트해 국가들에 군사 도발을 벌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메드베데프 부의장은 28일 “나토가 (러시아가 2014년 강제병합한) 크림반도를 침범하면 3차 대전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27일 기자회견을 열고 “러시아는 즉각적 위협”이라며 “발트해를 비롯해 동유럽 일대에 러시아에 즉각 대응할 수 있는 병력을 30만 명 이상으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미 NBC 방송은 28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나토 정상회의에서 리투아니아 등 발트해 연안 3국과 폴란드의 미군 주둔 규모를 확장하는 계획을 밝힐 것이라고 보도했다.
나토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동유럽 일대에 병력 4만2000명을 배치했다. 그럼에도 병력을 7.5배 이상으로 늘리겠다고 선언한 것. 2024년까지 나토 회원국 30개국 가운데 19개국이 국방예산을 국내총생산(GDP)의 2%로 올리는 나토의 목표를 달성할 것이라고 했다. 현재 9개국에 불과하다. 러시아의 핵위협이 나토의 군비 증강 본격화로 이어진 것이다.
니다·빌뉴스·파브라데=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