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뮤지컬 연출가이자 그간 ‘서편제’를 연출해온 이지나는 “초연 때부터 관객과 평단의 반응이 좋았지만 계속 적자가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한국적 소재로 뮤지컬을 창작해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마지막 공연 제작자를 찾지 못한 그는 이번엔 메가폰을 내려놓고 직접 제작에 나섰다.
뮤지컬 ‘서편제’가 올해를 마지막으로 12년 여정의 마침표를 찍는다. 원작 저작권 사용 기간이 만료돼서다. 이청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은 어느 소리꾼 가족의 한(恨) 담긴 일생을 다룬다. 그간 많은 배우가 ‘서편제’를 거쳐 갔지만 소리꾼 이자람(43)은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였다. 눈 먼 소리꾼으로 분한 이자람을 27일 서울 종로구의 카페에서 만나 ‘송화 12년’을 물었다.
“제가 하는 송화는 촛불 같아요. 꺼질락 말락 하는데 계속 켜있는 그런…. 주변 서사가 무엇이 됐든 상관 없이 흔들리지 않고 굳건하게 저 들풀에 핀 풀꽃처럼 그냥 살아요.”
―12년 전 ‘서편제’의 송화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
“아직도 너무 생생해요. 이지나(연출가)라는 사람이 제게 전화를 줬어요. ‘서편제’라는 좋은 작업을 한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뮤지컬에도 이자람이란 존재가 도움이 되도록 할 것이고, 이자람의 작업에도 누가 되지 않게 하겠다’고 멋있게 제안하셨어요. 나를 이렇게 존중해주고 나 그대로 무대에 올려주고 더 많은 관객을 만나게 해주겠다는데 그걸 누가 거절하겠어요.”
“뮤지컬을 하던 분들한텐 서운한 일이겠지만 전 판소리를 평생 해왔잖아요. 판소리란 장르적 한계, 편견과 싸우는 것은 제 몸에 완전 배어있는 일이에요. 낯설지 않은 감각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작품을 올려줘서 고맙죠. 쉬운 선택은 아니잖아요.”
“엄청 부담스러웠고 고민했죠. 함께 송화 역을 연기한 지연(뮤지컬 배우 차지연)이와 상부상조했어요.(웃음) 제가 ‘살다보면’ 어렵다고 하면 지연이가 봐주고, 지연이가 ‘심청가’ 때문에 분장실에서 울고 있을 때 함께 대화하면서 친해졌어요. 송화는 뮤지컬만 해서도, 소리만 해서도 안 되기에 분명 어려운 역할이에요.”
―‘서편제’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은 무엇인가.
“‘나의 소리’라는 노래를 좋아해요. 그건 제가 생각하기에 송화라는 인물에 가장 가까운 노래 같아요. 상황이 어떻게 되거나 그 노래를 마친 이후로 송화는 저벅저벅 제 갈 길을 가는 느낌이 들거든요.”
―‘서편제’는 가부장적 가치관이 깃든 고전이다. 현대와 동떨어진 서사라는 비판도 있다.
“많은 고전문학이 그렇듯 가족에서 아버지와 딸, 아들과 어머니라는 지정된 역할 그리고 역할 분담을 핑계로 상대에게 가하는 무례함이 있죠. 서편제도 자유롭지 않아요. 제가 송화로서 할 수 있는 말은, 우리가 송화를 어떻게 해석하는지 보러 오시라고 하고 싶어요. 우린 고전 없이 살 수는 없잖아요. 그걸 어떻게 해석해내느냐가 지금 시대의 예술가들이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엊그제 밥 먹으면서 울음을 아끼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몸과 마음이 튼튼하고 큰 시련도 잘 털어내는 송화요. 되게 큰 일이 다가와도 별일 아닌 것처럼 툭 털고 일어나는 서사에 매력을 느껴요. 겉은 어떨지 몰라도 송화의 내면은 굉장히 튼튼하고 유쾌했으면 좋겠어요.”
8월 12일~10월 23일, 서울 강남구 광림아트센터BBCH홀, 6만~13만 원.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