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비전 가정폭력 피해 지원사업 피해자에 보증금-가전제품 등 지원 6년간 800여 명 새 보금자리 찾아 다음달 5일 정책 포럼서 성과 보고
“하도 맞다 보니까 ‘내가 못나서 맞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까지 하게 됐어요.”
끔찍했던 가정폭력의 경험을 말하는 A 씨의 목소리는 의외로 담담했다. 20대 초반인 A 씨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렸다. 손찌검을 피해 찜질방에서 지낸 적도 있다. 고등학생이 된 후로는 ‘다 내려놓고 싶다’는 마음에 극단적인 생각을 자주 하게 됐다. 그때 여성가족부의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시설(쉼터)을 알게 됐다. 쉼터의 보호 대상은 성인 여성과 그 자녀다. 어머니와 함께 쉼터에 갔던 A 씨는 퇴소 후 국제구호개발 비정부기구(NGO) 월드비전의 지원을 받아 아버지와 떨어져 살 수 있는 새 집을 구했다. A 씨는 “살면서 한 번도 누리지 못한 안전한 일상 속에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희망을 찾았다”고 말했다.
○ 가정폭력 피해자에게 새 둥지
29일 여가부에 따르면 A 씨처럼 전국 66곳인 쉼터를 찾는 가정폭력 피해자는 지난해 총 1547명이었다. 가해자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쉼터의 위치를 비밀에 부치고 치료비도 지원하는 덕에 입소자들은 대체로 이곳에서 안정을 찾는다.
월드비전은 이처럼 쉼터에서 나온 후 갈 곳이 마땅치 않은 피해자 가운데 아동을 동반한 가정을 위해 2016년부터 자립 지원 사업을 벌이고 있다. 새 거처의 보증금과 석 달 치 월세, 가전제품, 가구 등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새로운 지역에서 직장을 찾아 자립할 수 있도록 식비와 공과금도 지원한다. 지난해까지 6년간 800명이 넘는 피해자들이 이 사업의 혜택을 받았다.
특히 긴급히 가해자의 손길에서 벗어나느라 책가방도 챙길 새 없이 낯선 환경에 처하게 된 피해 아동을 위해 심리 상담과 학비 지원도 병행하고 있다. 많은 피해자가 오랜 기간 트라우마에 시달리지만 고가의 심리검사비와 상담료가 부담돼 치료에 엄두를 내지 못한다. 월드비전은 지난해 아동 125명과 보호자 60명에게 심리상담과 검사를 지원했다. 대다수의 수혜자들이 심리적 안정을 찾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 가정폭력 보게 하는 것도 ‘학대’
월드비전은 국민의힘 김미애 의원실과 함께 다음 달 5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정책 포럼을 열고 지난 6년간의 가정폭력 피해아동가정 자립지원사업 성과를 보고한다. 신나래 서울대 사회복지연구소 교수는 쉼터 입소 후 월드비전의 자립 지원을 받은 10세 이상 아동 청소년 54명과 피해 여성 101명, 쉼터 종사자 11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발표한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