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적 함구증’ 딛고 의사가 된 쌍둥이 자매
‘착실하고 내성적인 쌍둥이’. 공부는 곧잘했지만 친구들 앞에선 고개를 끄덕이는 의사표현조차 하지 못했던 쌍둥이 자매 윤여진, 윤여주 씨(39)에게 붙었던 별명이다. 부모님은 자폐증을 의심했다. 집에선 수다쟁이가 되는 모습을 보고 걱정을 거뒀다. 초등학교 친구들은 “너 벙어리야?”라고 물었다. 5살부터 초등학교 시절 내내 타인이라는 지옥을 경험했던 두 사람은 성인이 되고 나서야 알았다. 자신들이 특정 상황에서 말을 하지 못하는 ‘선택적 함구증’을 앓았다는 사실을.
지난달 27일 출간된 ‘이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수오서재)에서 두 사람은 말을 못해 괴롭고 외로웠던 유년시절 기억을 꺼냈다. ‘자유의지에 따라 움직이고 말할 수 있는 날’을 갈망했던 시간을 거쳐 두 사람은 환자를 돌보는 의료인이 됐다. 여진 씨는 한의사, 여주 씨는 치과의사로 일하고 있다. 29일 화상으로 만난 두 사람은 “말은 못했지만 하고 싶은 말은 많았다. 선택적 함구증을 겪지 않는 한 이런 양가감정을 알기 어렵다. 선택적 함구증을 앓는 친구들의 심정을 대변하고 싶은 마음에 책을 썼다”고 입을 모았다.
초등학교 시절 말을 못해 상처가 됐던 순간은 어제 있었던 일처럼 생생하게 그려진다. 문방구와 분식집이 있던 후문에는 아이들이 북적거려 늘 정문으로만 등하교를 했던 날들, 돌아가면서 교과서 문장을 읽어야 할 때 자신의 차례가 가까워지면 숨이 막혔던 기억….
“친구들이 주는 과자나 초콜릿도 누가 볼까봐 못 먹었어요. 어느 날 너무 먹고 싶어서 몰래 과자를 먹으면서도 그게 너무 부끄러웠어요. 그 날이 아직도 기억나요.”(여진)
“선생님이 발표를 지키는 게 너무 괴로웠어요. 반장선거 후보로 친구들이 저를 추천했을 때 ‘하기 싫어요’라고 선생님한테 작게 말했는데 ‘기권은 없어’라고 하셨던 순간이 상처로 남았어요.”(여주)
“어린시절 내면의 상처는 누구나 있어요. 그 상처들을 자꾸 들여다보고, 글이나 말로 표현하는 연습이 필요해요. 괴로운 순간들을 회상하고 묘사하는 건 고통스럽지만 그 모습을 안아주고 보듬는 계기가 될 수 있어요.”(여진)
“여전히 우울해지거나 자존감이 낮아지는 순간들이 찾아와요. 나의 그런 모습들도 나의 일부라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부터가 치유의 시작이라고 생각해요.”(여주)
김재희기자 j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