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파워’ 혁명으로 축출됐던 독재자의 아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가 30일 필리핀 대통령으로 취임 선서를 했다. 그의 취임은 최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치적 부활 중 하나로 꼽히겠지만 반대론자들은 마르코스 가족의 이미지를 세탁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아버지가 군부의 지원을 받은 ‘피플 파워’로 쫓겨나면서 세계적 악명을 얻은 지 36년 만에 그 아들이 대통령직에 오른 것은 헌법과 공휴일, 많은 기념물들이 아버지 마르크스의 폭압적 정치를 상기시키고 있는 필리핀 민주주의를 흔들고 있다.
이날 정오 마닐라 국립박물관 계단에서 열린 행사에서 아버지 마르코스 통치 하의 계엄령 시대를 겪었던 희생자들과 운동가들은 마르코스 주니어의 취임식에 항의했다. 폭동 진압 부대, SWAT특공대, 저격수 등 수천명의 경찰들이 보안을 위해 베이사이드 관광 지구에 배치됐다.
마르코스 시니어의 통치 당시 구금돼 심한 고문을 당했던 70살의 활동가 보니파시오 일라간은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나 같은 계엄 피해자들에게 이것은 악몽이다”라고 말했다.
이 같은 역사적 짐과 적대감은 극심한 위기 속에 새로 6년 간의 임기를 시작하는 마르코스 주니어의 재임 기간 동안 그를 계속 괴롭힐 것이다.
필리핀은 2년 간의 코로나19 대유행으로 6만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하고, 장기 폐쇄로 경제가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불황에 빠져 빈곤, 실업, 기아가 악화되는 등 아시아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국가 중 하나이다. 코로나19는 올해 초 완화됐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전 세계적으로 물가가 급등하고 식량 부족에 대한 두려움도 촉발됐다.
마르코스 주니어는 지난 주 만일의 식량 공급 비상사태에 대비, 자신이 임시로 농업부장관 자리를 맡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는 “문제가 심각하다”며 주요 고문들에게 “식량 공급과 관련해 비상상황에 대비할 것을 요청했다”고 덧붙였었다.
지난달 필리핀 의회는 그의 러닝메이트이자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대통령의 딸인 새라 두테르테가 부통령 선거에서 압승했다고 선언했다.
마르코스 주니어는 취임 선서를 마친 후 “나를 위해 모두 기도해 달라. 대통령이 잘 돼야 나라가 잘 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아무 질문도 받지 않았다.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과 사라 두테르테 부통령은 또 부통령의 아버지 두테르테 전 대통령을 기소하고 국제 재판에 협조해야 한다는 요구에 직면, 정치적 딜레마가 불가피하다.
마르코스 주니어는 아버지의 통치 하에서 일어난 대규모 인권 침해와 약탈에 대해 인정과 사과를 거부하고 아버지의 (정치적)유산을 옹호해 왔다. 그러면서 그는 “조상들에 의해가 아니라, 내 행동으로 평가해 달라”고 호소했었다.
[마닐라(필리핀)=AP/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