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순수 우리 기술로 개발한 최초 우주발사체인 ‘누리호’ 발사에 성공했습니다. 이에 따라 한국은 자체 기술로 1t 이상 실용위성을 쏘아 올린 세계 7번째 국가가 되었습니다. 경제뿐 아니라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세계적 강국으로 올라선 겁니다.
우주 탐험은 인류의 오랜 꿈입니다. 가장 역사적인 사건이 1969년 아폴로호의 달 착륙입니다. 이는 당시 미국 연방정부 예산의 5.5%에 이르는 천문학적인 돈과 약 40만 명의 기술진이 참여한 사업입니다. 우주인 닐 암스트롱은 지구 이외의 천체에 발자국을 남긴 인류 최초의 인물로 아직까지도 기억됩니다. 그러나 아폴로호가 달까지 갔다가 무사히 지구로 돌아올 수 있었던 건 지상에서 치밀하게 탐사계획을 세우고 점검했던 과학자들 덕분입니다. 그 중심에는 미국의 여성 컴퓨터 과학자 마거릿 해밀턴(86·사진)이 있습니다.
그녀는 박사학위를 취득하려는 남편을 도우려고 고등학교에서 잠시 수학과 프랑스어를 가르치다가 1960년 매사추세츠공대(MIT)에 임시직으로 입사했습니다. 이후 날씨를 예측하는 소프트웨어 개발에 참여합니다. 그녀 이전까지 ‘엔지니어링’은 기계를 설계하고 만들어내는 하드웨어적인 작업이었습니다. 컴퓨터 사이언스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에 대한 개념이 없던 시기라 그녀 스스로 현장에서 프로그래밍을 공부하며 배워 나갑니다. 이러한 그녀의 노력이 인정받아 미 항공우주국(NASA)으로부터 아폴로 비행 소프트웨어의 선임 개발자로 지명됩니다.
이때 그녀는 달 착륙에 문제가 생길 것에 대비했습니다. 우주선이 처리할 수 있는 작업이 용량을 초과하는 경우를 미리 감지하도록 프로그램해 둔 겁니다. 아니나 다를까 달 착륙 시작 3분 만에 너무 많은 작업이 동시에 입력되는 바람에 우주선에 과부하가 걸립니다. 경고창을 통해 상황을 알게 된 조종사들이 달 착륙에 필요한 작업을 먼저 처리하도록 명령해 아폴로 11호는 무사히 달에 착륙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는 여성의 역할이 제한되던 시대였습니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닐 암스트롱만을 기억할 뿐 그녀의 업적은 덜 알려진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없었다면 달 착륙도, 우주 비행사들의 안전한 지구 귀환도 성공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녀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이라는 새로운 학문 분야를 개척하고 그 유용성을 직접 입증해낸 과정은 오늘날 많은 엔지니어들의 좋은 본보기가 됩니다.
이의진 누원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