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에서 나오면 날마다 봄옷 저당 잡히고, 매일 강가로 나가 잔뜩 취해 돌아온다.
가는 곳마다 으레 술빚이 깔리는 건, 인생 일흔 살기가 예부터 드물어서지.
꽃밭 속 오가는 호랑나비 다문다문 보이고, 물 위 스치며 잠자리들 느릿느릿 난다.
봄날의 풍광이여, 나와 함께 흐르자꾸나. 잠시나마 서로 즐기며 외면하지 말고.
조회가 끝나는 대로 강가로 나가 술에 젖는다. 무일푼이 되면 입은 옷을 저당 잡히고라도 마신다. 급기야 외상술로 이어지니 도처에 술빚이 깔리는 건 예사. 왜 이토록 음주에 목매는가. 시인은 ‘인생 일흔 살기가 예부터 드물었다’는 핑계로 술빚의 당위성을 강변한다. 길지 않은 인생, 삶의 신고(辛苦)에 시달리는 마당에 술빚 걱정까지 하며 살 수는 없지 않느냐고 한탄한다. 두보의 험난한 인생 경로를 되짚어 보면 자포자기 같은 이 고백이 영 생뚱스럽지만은 않다. 취한 시인의 시야에 잡힌 건 나비와 잠자리. 저들의 아름다운 자유가 바야흐로 봄 풍광에 녹아들고 있다. 잠깐 동안의 즐거움, 잠깐 동안의 탐닉일망정 서로 외면하지 말자는 시인의 소망은 그래서 더 간곡하다.
시인의 조부와 부친이 모두 예순 무렵에 세상을 떴고, 당대 묘지명에 새겨진 5000여 명의 평균 나이가 59.3세라는 기록도 있으니 ‘고희(古稀)’란 말이 결코 과장은 아니다. 이 말이 괜히 성어로 통용되었겠는가. 그렇더라도 당시 조정의 특별 예우를 받으려면 여든은 넘겨야 했다. 여든부터는 곡식과 비단이 내려졌고, 열 살 단위로 종6품에서 종3품에 이르는 명예 관직까지 부여되었으니 말이다.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