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리 에세이스트
손글씨로 예술 작업을 하는 사람을 만났다. 그는 매일 책을 읽고 문장을 쓰고 식물을 돌본다. 창가에는 크고 작은 화분들이 모여 있고, 초록 잎들이 커튼과 벽을 만지며 뻗어나간다. 나무 책상에 쌓아둔 시집 더미 사이로 몬스테라가 자란다. 더듬어 만져봐야 알아채는 나무 책상의 옹이처럼 우리에겐 비슷한 마음의 상처가 있었다. 아픈 마음이 나아지기까지 그 지난한 시간을 어떻게 지나왔는지 나는 물어보았고, 그는 식물들을 돌보았노라 대답했다.
“제가 사는 집은 조그만 북향집이라 해가 간신히 들어요. 하지만 약간의 빛이어도 자랄 수 있어요. 식물들은 해를 따라 고개를 움직여요. 축 늘어지기 시작하면 물을 달라는 거예요. 아무 기척 없어서 죽은 걸까 걱정할 때 새순이 돋아나기도 해요. 그때의 벅찬 마음은 말로 못 하죠. 분갈이를 하거나 물을 흠뻑 줄 때는 온종일 화분들을 옮기고 만지고 청소해 줘야 해요. 힘들지만 뿌듯해요. 때때로 내가 돌보는 것들이 나를 돌본다는 느낌을 받거든요. 식물들 곁에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힘이 차오르는 것 같아요.” 무언가를 진짜로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저도 아이들을 돌볼 때 꼭 그런 마음이 들어요. 내가 아이들을 돌보고 있지만 때때로 아이들이 나를 돌본다고 느끼거든요. 몸은 힘들지만 마음이 뿌듯해요. 생명이란 참 신기하죠. 살아있는 것들은 모두 눈길과 손길과 마음이 필요하니까요. 서로를 돌보는 일, 그게 함께 살아가는 일이라는 걸 알아가요.”
“살아있는 식물을 선물하고 싶었어요. 잘 돌봐주세요. 일상이 온전치 못한 날들이었지만, 몸도 마음도 평소와 다름없기를 바랄게요. 무엇보다도 행복만큼은 늘 같은 날들이기를.” 헤어질 때 그에게서 수국 화분을 선물 받았다. 마음도 자란다. 자라나는 것들이 그러하듯 일일이 모두 아파보며 자란다. 하지만 곁에 또 다른 마음이 있다면 괜찮을 것이다. 꽃을, 사람을, 마음을 돌보며 행복만큼은 늘 같은 날들이기를. 나에게 온 푸른 수국을 가만히 껴안아 보았다.
고수리 에세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