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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토 정상회의에 참가한 한국의 위상[알파고 시나씨 한국 블로그]

입력 | 2022-07-01 03:00:00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알파고 시나씨 튀르키예 출신·아시아엔 편집장


윤석열 대통령이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한 뒤 오늘 귀국할 예정이다. 신임 대통령으로서 첫 해외 순방인 만큼 윤 대통령의 마드리드행은 언론의 큰 관심을 받았다. 특히 윤 대통령의 부인인 김건희 여사도 많은 화제를 모았는데 일부에선 김 여사의 동행을 비판하는 의견도 있었다. 또한 예정됐던 윤 대통령의 일부 회담이 막판 취소된 것을 두고 새 정부의 외교 역량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하면 중국을 자극하는 것 아니냐”며 우려하는 이들도 있었다.

나름의 일리가 있는 지적들이다. 하지만 우리가 정작 집중해야 할 부분이 이런 부분은 아닌 것 같다. 한국은 나토 회원국이 아닌데도 이번 정상회의에 처음 초청받았다. 최근 급격히 변화하는 국제 정세, 그리고 한국의 위상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윤 대통령의 일부 회담이 연기되거나 취소된 것도 당장 비난하기보다는 큰 틀에서 볼 필요가 있다. 게다가 다자 간 정상회의에서는 갑작스러운 회동도, 불발도 비교적 흔한 일이다.

한국은 동아시아에 위치한 까닭에 유럽과 지리적으로 먼 곳 중 하나다. 나토의 영향력에 대해 체감하기 쉽지 않고, 관심도 덜할 수밖에 없다. 나토의 활동은 역사적으로 여러 변곡점을 맞았다. 소련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의 일부 동부 지역을 공산화하자 서유럽이 미국과 함께 만든 군사동맹 체계가 나토다. 쉽게 말해 회원국들의 군대를 통합해 하나의 ‘동맹 군대’를 구축한 것이다. 물론 제일 큰 군대를 가진 미국이 나토의 맹주 역할을 했다.

나토는 냉전 시기에는 자유 진영의 상징 중 하나였다. 나토 회원국의 시민단체가 반(反)나토 운동을 벌이는 것 자체가 공산주의 운동을 하는 것으로 인식될 정도였다. 그렇다면 왜 회원국의 일부 시민단체들은 나토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낸 것일까. 미국이 가끔 나토를 통해 회원국에 내정간섭을 했기 때문이다. 물론 소련도 나토를 견제하는 차원에서 이웃 공산권 국가를 규합해 바르샤바조약기구(WTO)를 만들었지만, WTO가 아니더라도 소련은 이미 공산권 국가의 ‘형님’ 이미지로 다른 공산국들에 내정간섭을 하고 있었다.

1990년대에 냉전 시기가 마무리되면서 나토의 필요성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다. 미국은 중요한 국제외교 카드인 나토를 잃고 싶지 않았지만 나토의 창립목표에 해당하는 위협이 사라졌으니 유지할 명분이 없었다. 한때 러시아도 나토에 가입하려 할 정도로 나토의 정체성은 애매해졌다.

그러던 중 국제적 테러 사건이 늘어나면서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 군사개입을 하려고 했다. 그때 나토가 다시 활용됐다. 미국이 나토를 통해 동맹국들과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한 것. 그 이후에도 미국은 중동 지역에 개입할 때마다 나토를 이용했다. 원래 유럽에서 공산주의를 막으려고 만든 나토가 중동에서 활용된 것이다.

이런 찰나 러시아가 국제적 문제로 떠올랐다. 공산주의는 붕괴했지만 러시아의 민주주의는 유럽식 민주주의가 아니라 스탈린 시기의 민주주의여서 구미 세계는 굉장한 불편함을 느꼈다. 또 러시아는 거리낌 없이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합병했다.

그때 미국이 나토의 존재 가치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었다. 1940년대 유럽에서 나토는 공산주의를 막는 군사 기구였지만, 오늘날 나토는 미국에서 반민주주의적인 권위주의를 막는 기구로 재구성됐다. 미국은 나토를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동맹국들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지 시험하고 있다. 마드리드 정상회의는 신뢰관계를 검증하기 위한 상징적인 자리이다.

이런 차원에서 윤 대통령이 나토 회의에 참석한 것은 여러 의미가 크다. 한국이 동아시아에 머물지 않고 멀리 유럽 지역과 경제 및 안보 협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에 대한 중국과 러시아의 대응도 바뀔 수 있다. 한국은 이렇게 복잡하지만, 매우 중요한 외교안보 시험대에 본격적으로 오른 것 같다.


알파고 시나씨 튀르키예 출신·아시아엔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