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편지 129통 담은 ‘우편함 속 세계사’
아우슈비츠에서 사망한 유대인 여성 빌마 그륀발트(왼쪽)와 남편 쿠르트 그륀발트의 생전 모습. 미국 홀로코스트 추모 박물관 제공
청년은 나중에 자신의 이름을 이오시프 스탈린(1879~1953)으로 바꾼다. 그는 러시아 혁명에 동참해 러시아 제국을 전복시키고 블라디미르 레닌(1870~1924)을 도와 소련을 세웠다. 30여 년 간 소련을 이끈 정치인이자 수많은 사람을 학살한 독재자가 됐다. 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은 인간이지만 편지에선 의외로 로맨틱한 면모를 찾아볼 수 있다.
‘우편함 속 세계사’(시공사)는 역사학자인 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가 전 세계의 편지 129통을 모았다. 가족, 전쟁, 권력, 작별 등 18개 주제에 맞춰 편지를 추려 담고 해설을 덧붙였다. 프랑스 소설가 오노레 드 발자크(1799~1850)가 자신의 팬에게 보낸 열정적인 편지, 독일 정치인 아돌프 히틀러(1889~1945)가 소련을 침공하기 전날 밤 이탈리아 정치인 베니토 무솔리니(1883~1945)에게 전쟁을 암시하는 편지를 읽다보면 제목처럼 우편함 속에 세계사가 담겨있다는 생각이 든다.
뛰어난 편지는 연설보다 효과적일 수 있다. 1940년 영국 정치인 윈스턴 처칠(1874~1965)은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1882~1945)에게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달라고 요청하는 편지를 쓴다. 당시 처칠은 총리가 된 지 겨우 열흘 밖에 되지 않았다. 나치가 프랑스를 점령한 뒤 영국 공격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처칠은 “우리는 항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호소하면서도 영국이 패전한다면 “대통령께 남은 협상 카드는 오직 함대밖에 없다”고 도발한다.
빌마는 아우슈비츠 가스실로 떠나기 전 남편에게 쓴 편지에서 “숨을까도 생각했지만 그래 봐야 가망이 없을 것 같아 그러지 않기로 했다. 이건 우리의 운명이다”라고 썼다.미국 홀로코스트 추모 박물관 제공
“트럭들이 이미 와 있고, 그 일이 시작되기만 기다리고 있어요. 나는 전혀 동요하지 않아요. 우리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스스로를 비난하지 마세요. 사랑하는 두 사람 모두, 꼭 건강해야 해요. 멋진 인생을 살아요. 우리는 이제 트럭에 올라야 해요. 영원히 안녕.”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