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형 위성 발사체 시장 개척 ‘이노스페이스’ 12월 브라질서 ‘한빛-TLV’ 시험발사 고성능 고체 연료-전기모터 펌프로 폭발 위험 없애고 가성비는 높여 민간기업 연구원 지낸 김수종 대표… 발사체에 20여 년 집중해 독자기술
지난달 23일 이노스페이스 청주사업장에서 김수종 대표(앞)가 12월에 발사할 로켓 옆에 생산팀 직원들과 함께 섰다. 본사와 1, 2사업장, 연구소는 세종시에, 지상 연소시험장은 금산에 있다. 김 대표는 “무인 발사체를 넘어 2030년에는 유인 우주선까지 개발하는 꿈을 꾸고 있다”고 했다. 청주=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누리호 발사 성공으로 우리에게도 우주 시장이 성큼 다가왔다. 이노스페이스는 12월 중순 소형 위성용 발사체를 브라질에서 시험 발사한다. 국내 민간기업으로 위성용 발사체 시험 발사는 처음이다. 발사체의 성능을 검증하는 발사지만 브라질 정부는 자국이 개발 중인 관성항법시스템(로켓이나 비행기의 항법 장치)을 탑재해 시험해 보기로 결정했다. 이노스페이스의 기술력이 높아 실패 가능성이 낮다고 본 것이다. 이노스페이스는 시험 발사에 성공하면 내후년부터는 돈을 받고 위성을 대신 쏘아 올려주는 위성 발사 사업을 시작한다.
○ 발사대-지원설비 등 9월부터 이송
이노스페이스는 내후년에 회당 20억 원을 받고 50kg의 위성을 500km 상공까지 쏘아 올려주는 위성발사 사업을 시작할 계획이다. 2025년에는 탑재 중량 150kg 발사체를, 2026년에는 500kg까지 실을 수 있는 발사체를 상용화할 예정이다. 탑재 중량 500kg까지의 발사체를 소형 위성용 발사체로 분류한다. 연말에 시험 발사하는 추력 15t 엔진을 묶어서 추력을 높이는 제어기술은 이미 개발에 착수했다. 머지않아 3종의 로켓을 보유할 수 있을 것으로 회사 측은 기대하고 있다.
김수종 대표(46)는 “발사체와 발사대, 지원설비 등을 브라질로 이송하는 작업을 9월부터 시작한다”고 밝혔다. 적도 인근에 있는 브라질 알칸타라 발사센터와는 2019년에 시험 발사 협의를 마쳤고, 2026년까지 발사 라이선스도 확보한 상태다. 국내에서 민간기업이 활용할 수 있는 발사대는 2024년 이후 누리호가 발사된 전남 고흥에 생길 예정이다.
○폭발 위험 없는 하이브리드 로켓 기술 독보적
창업한 지 5년 된 스타트업이 위성을 우주로 쏘아 올릴 수 있는 로켓을 독자적으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은 발사체의 핵심인 엔진 기술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산화제와 연료 모두 액체를 사용하는 누리호와 달리 한빛의 산화제는 액체, 연료는 고체다. 성질이 다른 요소를 활용했다고 해서 하이브리드 로켓 엔진으로 불린다. 연료는 양초의 원료와 같은 파라핀이고, 산화제는 여느 로켓과 마찬가지로 액체 산소다.단점은 액체 로켓에 비해 추력이 약하다는 점이다. 20년 전만 해도 로켓을 쏘아 올릴 만한 추력은 내기 힘들 것으로 보고 위성발사용으로는 고려 대상이 되지 않았다. 이노스페이스는 고성능 파라핀계 연료 기술과 작고 가벼운 전기모터 펌프를 독자 개발해 이를 극복했다. 이 두 기술이 핵심 경쟁력이다.
연료의 성능을 높이려면 파라핀 배합 비율은 물론 고체 연료의 성형 모양도 중요하다. 산소와 적절하게 결합해 연소가 잘되도록 하는 최적의 방식을 찾아냈다. 펌프는 연료와 섞일 산화제의 양을 조절하는 장치인데, 전기모터를 활용해 작고 가볍게 만듦으로써 탑재 중량을 늘렸다. 세계에서 하이브리드 로켓 기술을 가진 회사는 5곳인데, 다른 기업들은 액체로켓에 쓰이는 무거운 펌프를 사용한다. 같은 양의 연료로 얼마나 큰 추력을 내는지를 의미하는 비추력(연비와 비슷한 개념) 부문에서 이노스페이스는 하이브리드 로켓 개발 기업 중 단연 선두다.
○박사 논문이 창업으로 이어져
김 대표는 공군사관학교에 가서 파일럿이 되고 싶었지만 시력이 좋지 않아 한국항공대 기계설계학과로 진학했다. 항공기 설계를 꿈꾸다 3학년 때 교내에서 하이브리드 로켓 연소시험을 참관한 뒤 로켓 개발의 길로 들어섰다. 김 대표는 “엔진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와 진동, 웅장한 소리가 가슴을 뛰게 했다”고 했다.하이브리드 로켓 국내 1호 박사가 김 대표다. 2011년 파라핀을 하이브리드 로켓의 연료로 활용하는 방안에 관한 논문으로 한국항공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3년간 이스라엘의 이공계 연구중심대학인 테크니온-이스라엘공과대 로켓추진센터에서 박사후 과정을 밟았다. 귀국해 한화에서 로켓추진기관 개발 연구원을 지내다 2017년 창업했다. 김 대표는 “민간 기업에서 근무하며 로켓 개발에 필요한 국내 기반 기술 수준과 원가 등을 자세히 알게 돼 창업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회사를 차리고는 동료와 선후배 연구원들을 끌어들였다. 창업을 한 지는 5년이지만 한국항공대에서 기초 연소실험장치를 만든 때부터 셈하면 20여 년의 연구가 발사체에 집약된 셈이다. 김 대표는 국내외에서 논문을 100여 편이나 냈다.
세계를 상대로 하는 사업인 만큼 해외 인력 확보에도 공을 들였다. 브라질에서는 엘시오 올리베이라 전 공군 우주국 부국장이, 유럽에서는 방산기업 헤라클레스(사프란 그룹에 합병됨) 최고경영자를 지낸 필리페 슐레이셔 씨가 일하고 있다.
○커지고 있는 소형 위성 시장 공략
인공위성은 대형보다 소형 위성 수요가 훨씬 더 많다. 지난해 기준으로 전 세계 발사 위성의 94%가 중량 500kg 이하의 소형 위성이다. 지구관측(농업, 기상, 자원탐사, 국가안보, 우주과학)과 통신(TV, 전화, 인터넷, 항공, 해상)용 위성이 많다. 2020년 이전 10년간 2962개의 소형 위성이 발사됐는데, 2030년까지는 1만3912개가 발사될 예정이다. 특히 초고속 인터넷용 소형 위성 시장이 급성장 중이다. 이런 위성은 무게가 100∼400kg이고 수명은 5년 정도다.2021∼2030년 소형 위성 발사 시장 규모는 25조 원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위성을 발사해 줄 수 있는 기업은 현재 약 10곳에 불과하다. 이를 노리고 소형 위성 발사체 개발에 뛰어든 스타트업은 40여 곳이고, 현재 3곳이 발사에 성공했다.
김 대표는 “3년 내에 10여 개 위성발사 사업자가 더 생길 것으로 예상되는 중요한 시기”라며 “로켓 재사용 기술까지 확보해 경쟁사들보다 더 낮은 가격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