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수출기업 생태계] 〈上〉 중소 협력사들 먼저 고사 위기에 수출 악화 직격탄, 고사 위기 내몰려… 폐업 中企 중고장비 매물 15% 증가
“1kg에 2000원 하던 플라스틱이 4500원으로 올랐습니다. 그런데 모든 나라에서 소비를 하지 않으면서 물건은 팔리지 않아요. 이렇게 상황이 안 좋은 것은 처음입니다.”
인천에서 한국콜마와 아모레 등 국내 화장품 대기업 납품 플라스틱 용기를 만드는 A업체는 원료 가격 폭등과 국경 봉쇄, 소비 침체가 겹치며 생존을 고민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A사 관계자는 “거래처들 수출이 안 되니 목요일이면 일이 끊긴다. 작은 기업은 버티기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올해 들어 고유가 고환율 고금리 고물가 등 ‘4고(高)’로 수출 대기업이 타격을 입는 가운데 제조업 생태계를 이루는 중소 협력업체들이 폐업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비상경제장관회의를 열고 “하반기에도 수출업체들이 처한 여건은 녹록지 않을 것”이라며 “수출 중소·중견 기업 무역금융을 당초 계획보다 40조 원 이상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원료비 치솟고 수출은 급감… 中企 “누가 먼저 쓰러질지” 한숨만
아연-니켈값 1년새 20%이상 급등, 작은 회사들 환율 대책도 거의 없어
“손해봐도 납품위해 기계 돌려야”
코로나 전보다 물류비 250% 올라도 기업 6%만 “공급망 위기 대책 마련”
경유 가격이 뛰며 물류비용 부담마저 커졌다. B사 관계자는 “우리처럼 작은 회사들은 지금처럼 악재가 겹치면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경영을 악화시키는 변수가 하나씩 사라지기만을 바랄 뿐인데 그게 언제일지 정확히 예측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 손해 보더라도 기계 돌리는 중소업체들
삼성과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들이 원자재 인상분을 어느 정도 보전해 주고 있지만 전기료, 유류비, 인건비 등이 함께 치솟고 글로벌 소비 침체로 수출 물량이 줄자 감당이 안 된다는 것이다. 수출 대기업에 각종 부품을 공급하는 협력업체들이 무너지면 국내 수출 제조업 기반이 취약해지는 ‘생태계 붕괴’가 우려된다.
자동차 부품업체 C사는 국내 완성차 업체 납품과 해외 수출을 동시에 하는 기업이다. 국내에선 원자재(철강) 인상분을 원청업체가 90%까지 보전해준다. 하지만 그 외 기름값과 전기료, 제품 포장비닐 등 부대 비용 인상분을 그대로 떠안고 있다. 미국에 물건을 실어 보내는 해상 물류 비용이 코로나 이전과 비교해 250% 올랐는데 이마저 배를 확보하지 못해 납품에 차질이 크다.
이 회사 관계자는 “영업이익률은 반 토막 났고 조만간 적자로 돌아설 것 같다”며 “다 비슷한 상황이어서 협력업체들끼리 모이면 누가 먼저 쓰러질 것인지 지켜볼 일만 남았다는 자조만 하고 있다”고 전했다.
○ 하반기 전망도 암울
수출 전망도 좋지 않다. 수출이 악화되면 국내 대기업 영업 실적이 나빠지고 협력업체들의 일감도 줄어든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12대 수출 주력 업종 150개 사 대상 ‘2022 하반기 수출 전망 조사’를 진행한 결과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전기·전자와 철강, 석유·화학 업종의 하반기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감소할 것으로 관측된다.
글로벌 공급망 여건도 불투명하다. 전경련 조사 결과 상반기 대비 하반기 공급망 여건에 대해 응답 기업 중 90.7%는 상반기와 비슷하거나 악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했다는 응답은 6.0%에 그쳤다.
유환익 전경련 산업본부장은 “우리 경제의 큰 축을 담당하는 수출 증가세가 둔화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원자재 공급망 확보, 수출 물류 애로 해소 등 수출 실적 개선을 위한 환경 조성에 정부가 더욱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했다.
中企 “연봉 제시했더니 ‘그 정도는 배달 알바도 번다’고 하더라”
물가-환율外 인력난도 고민
“원료비에 인건비도 함께 올라
영업이익은 갈수록 떨어져
영어가능 인력 구인에 18개월 걸려”
“원자재 가격 오른 건 어디 하소연할 데라도 있지만 인건비 부담은 업체들이 그냥 안고 가야 합니다.”
국내 중소 협력업체들은 고물가와 고환율 외에 경영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인력난’을 꼽았다. 단순히 최저임금이 올라 인건비 부담이 늘어난다는 차원이 아니라 ‘인력 미스매치’와 ‘인건비 인플레이션’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인력 수급과 비용 부담을 동시에 짊어지게 된 것이다.
국내 생활가전 대기업에 물건을 납품하는 D사는 “마진을 도저히 늘릴 수 없는 구조”라고 하소연했다. D사는 대기업 원청업체로부터 원자재 가격 인상분을 보전받고 있지만 인건비 상승분은 꼼짝없이 자체적으로 부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D사 관계자는 “협력업체들이 대기업과의 계약을 유지하려면 납품단가를 맞춰야 하는데 원료비에 인건비가 함께 오르면서 영업이익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높은 임금을 지급하더라도 인력을 구할 수 있는 중소 협력업체들의 사정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한 중소업체 관계자는 “회사에서 책정한 연봉을 구직자에게 제시했더니 ‘그 정도면 배달 오토바이를 타도 번다’는 답이 돌아왔다”고 전했다.
수출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 영어가 가능한 인력을 구하는 데 1년 6개월이 걸렸다는 업체도 있었다. 이 회사 관계자는 “2년 전만 해도 채용공고를 올리면 30, 40명씩 구직자가 찾아왔는데 최근 임금 인플레이션이 겹치며 요즘은 아예 지원 자체를 안 하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달 29일 발표한 ‘2022년 상반기 직종별 사업체 노동력 조사’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5인 이상 사업장의 인력 미 충원율은 13.6%로 9년 새 최고치를 나타냈다. 같은 기간 기업은 130만3000명을 채용하려 했지만 채용한 인원은 112만8000명에 그쳤다. 금속·재료 설치·정비 생산직(37.9%), 섬유·의복 생산직(37.0%) 등 뿌리산업에서 미충원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부 관계자는 “임금 수준 등 근로조건이 구직자의 기대와 맞지 않거나 사업체에서 요구하는 경력을 갖춘 지원자가 없어서 미충원이 늘었다”고 밝혔다.
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세종=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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