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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 반지 대신 팬들 사랑을 끼고 떠난다” 박용택의 마지막 인사

입력 | 2022-07-04 01:38:00


뜨거운 눈물과 유쾌한 웃음으로 LG 트윈스의 ‘영원한 33번’ 박용택(43)이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3일 잠실 구장에서 LG와 롯데 자이언츠이 끝난 뒤 박용택의 은퇴식 겸 영구결번식이 시작됐다.

박용택이 그라운드와 영원한 작별을 고하는 자리다.

2002년 KBO리그에 입성한 박용택은 2020년 현역 생활을 마칠 때까지 줄곧 LG에서 뛰었다. 2020시즌 뒤 은퇴했지만 코로나19로 관중 입장이 제한되면서 은퇴식은 이날 치렀다.

꾸준하고, 성실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통산 19시즌 동안 2236경기에 출전해 타율 0.308, 2504안타 213홈런 1192타점 1259득점 313도루의 성적을 냈다.

이날은 은퇴 경기 선수를 위한 특별 엔트리 제도로 박용택은 1군에 등록, 3번 타자 좌익수로 선발 출전하며 통산 2237번째 경기를 마무리했다.

구단은 박용택의 등번호 33을 김용수(41), 이병규(9)에 이어 세 번째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다.

선수시절 자신의 등장곡이었던 김범수의 ‘나타나’가 울려퍼진 가운데 LG 유니폼을 떠올리게 하는 줄무늬 양복을 입은 박용택이 그라운드에 모습을 드러냈다. 등장부터 ‘울보택’이란 별명답게 붉어진 눈시울로 벅찬 감정을 드러냈다.

차명석 LG 단장이 영구 결번을 선언했고, 33이 새겨진 깃발은 잠실 구장에 게양됐다. 김용수, 이병규는 자신들의 뒤를 이어 영구결번의 영광을 안은 박용택에게 꽃다발을 전달했다.

박용택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 이들의 축하 영상도 이어졌다. 김용달 전 코치와 손주인 삼성 라이온즈 코치, 키움 히어로즈 정찬헌, 이동현 SBS 스포츠 해설위원 등이 제2의 인생을 응원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박용택은 고별사를 통해 팬들에게 직접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LG 트윈스의 심장 박용택”이라며 큰 소리로 인사를 시작한 박용택은 “대본은 집어치우겠다”며 자신만의 솔직한 심경을 있는 그대로 전달해나갔다.

선수 인생의 마지막 무대에 서서, 처음 야구를 시작하던 날을 떠올렸다. “1989년 11월,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 야구부가 생겼다. 감독님이 ‘야구선수로 성공할 수 있다’며 8개월 정도를 쫓아다니셨다”고 회상한 박용택은 “아버지가 엘리트 농구선수셨다. 운동이라는 게 노력만큼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아셨다. ‘야구를 하면 그때부터 인생은 야구다, 마음의 준비가 되면 이야기하라’고 하셨다”고도 했다.

그렇게 시작한 야구는 그의 인생이 됐다. 박용택은 “야구에 첫 발을 내디딘 이후로 단 하루도 즐겁게 야구를 해본 적이 없다. 야구를 너무 사랑한다. 내 인생은 야구다. 그런데 야구를 즐겁게 해선 안 되더라”며 쉽지 않았던 야구 인생을 곱씹었다. 그러면서도 “내가 안 즐거웠어도, 여러분이 즐거웠으면 됐다”며 환하게 웃었다.

몇 차례 울컥해하면서도 박용택은 큰 웃음을 지으며 팬들에게 밝은 인사를 건네려 애썼다.

“입단 했을 때 야구장 우측 폴 쪽에 ‘41번’ 김용수 선배님의 유니폼이 걸려있었다. 그게 나의 막연한 꿈이었다. 그리고 병규 형, 내 롤모델이었고 때론 라이벌이었다. 내 목표였고, 넘어보고도 싶었다. 병규 형이 은퇴할 때는 영구결번이 확실한 목표가 됐다. 그리고 오늘, 지금 이 순간, 내가 3호가 됐다”고 감격했다.

2009년 홍성흔(당시 롯데)과 타격왕 경쟁을 하다 ‘졸렬택’이란 별명을 얻기도 했던 그는 고별사에서도 그 순간을 다시 끄집어냈다.

“이렇게 멋진 자리에서 다시 한번 말씀 드리고 싶었다”며 “나는 그 순간 졸렬했을지 몰라도 진짜 졸렬한 사람은 아니다”며 다시 한 번 후회의 뜻을 나타냈다.

남은 선수들에게도 메시지를 전했다.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 팬보다 위대한 팀은 없다. 팬보다 위대한 야구도 없다”며 “아쉬운 건 딱 하나다. 우승 반지 없이 은퇴한다. 우승 반지 대신 여러분의 사랑을 끼고 은퇴한다”고 말했다.

웃음으로 고별사를 이어나가던 박용택은 가족 앞에서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한)진영아, 힘든 시간 정말 묵묵히 어떤 티도 내지 않고 옆에서 언제나 잘 될 거라고 내조해준 진영아. 사랑한다”는 말을 눈물 속에 어렵게 이어나갔다.

팬들은 그런 박용택의 이름을 큰 소리로 연호했다.

“은퇴하면 팬들의 사랑을 확실하게 더 느낀다”며 다시 마음을 추스른 박용택은 “한국야구 팬들, LG 트윈스 팬들, LG 트윈스 선수들, 저 박용택 한국야구를 위해 파이팅하겠다”고 마지막 약속을 남겼다.

인사를 마친 선수들의 헹가래를 받고 기념촬영을 했다. ‘LG의 선수’로 찍는 마지막 사진이다.

그리곤 팬들이 부르는 자신의 응원가를 들으며 천천히 걸어 그라운드를 크게 돌았다. 1루 근처에선 잠시 멈춰서 휴대폰을 꺼내들곤 응원하는 팬들을 배경으로 셀카도 찍었다. 외야까지 한 바퀴 돈 후 정들었던 그라운드를 떠났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