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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軍이 침묵할 때다[신규진 기자의 국방이야기]

입력 | 2022-07-05 03:00:00

이대준 씨가 북한군에 의해 서해상에서 피살된 지 이틀 뒤인 2020년 9월 24일 안영호 당시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이 국방부 청사에서 이 씨 사망 사건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동아일보DB

신규진 기자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2020년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은 당시 군을 출입했던 기자 입장에선 굉장히 찝찝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사건이 전개된 양상도 충격적이었지만 당시 제기된 많은 의혹이 명쾌하게 해소되지 않은 채 시간이 흘러갔기 때문이다.

일단 당시 정부와 군의 대응 자체가 상식적이지 않았다. 고 이대준 씨는 2020년 9월 21일 오전 11시 반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실종된 뒤 22일 오후 3시 반 서해 북방한계선(NLL) 북쪽 해역에서 발견됐다. 이후 6시간 10분 뒤인 오후 9시 40분경 북한군은 그에게 총격을 가하고 시신을 불태웠다.

군이 이 씨가 실종돼 북한 해역에서 발견됐다는 내용을 언론에 처음 공지한 시점은 다음 날인 23일 오후 1시 반. 실종 50시간 반 만이자, 그가 북한군에 발견된 사실을 군이 인지한 지 22시간이 지난 뒤였다. 그런데도 정작 전날 이 씨가 사망했다는 사실은 없었다.

당시 기자는 군의 ‘늑장공개’가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군에 이 씨 생사와 관련된 정보에 대해 ‘함구령’을 내렸기 때문이라는 기사를 쓴 바 있다. 국방부는 이 보도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라고 발끈했다. 하지만 북한 관련 사안이 있을 때마다 안보실이 개입해 군에 지침이나 함구령을 내리는 행태가 지나치다는 불만이 군 내부에선 익숙했기에 이런 ‘공식’ 반응은 납득하기 어려웠다.

그로부터 1년 9개월이 지난 지금, 군은 그동안 부정했던 안보실 개입 정황을 스스로 폭로했다. 이 씨 사망 5일 뒤인 2020년 9월 27일 국방부가 안보실로부터 지침을 받아 최초 발표에서 변경된 입장을 언론에 설명했다고 한 것. 실제 군은 “시신을 불태웠다는 만행을 ‘확인’했다”(9월 24일)고 밝힌 다음 날(9월 25일) 북한이 시신이 아닌 부유물을 소각했다고 주장하자 돌연 “시신 소각이 ‘추정’된다”(9월 27일)로 입장을 바꿨다.

이제 사건은 이 씨가 사망한 9월 22일 밤부터 그의 사망 사실을 군이 최초로 발표한 9월 24일 아침까지 군과 해경의 섣부른 ‘자진월북’ 판단에 청와대가 어떻게 개입했는지를 규명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기자는 서욱 당시 국방부 장관이 9월 23일 세 번이나 청와대를 찾았던 이유와 거기서 이뤄진 두 번의 관계장관회의, 알려지지 않은 한 번의 또 다른 회의 내용을 밝히는 게 이번 사건의 핵심이라고 본다.

감사원 감사와 검찰 수사가 개시된 만큼 이제 사건은 새 국면에 접어들었다. 진실 규명 작업에 속도가 붙은 동시에 정치권까지 가세해 공방이 뜨겁다. 여야는 앞다퉈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참전했고 여러 해석이 덧붙여지며 사건은 정치 이슈로 변모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월북으로 추정된다’는 기존 판단이 ‘월북으로 단정할 수 없다’로 변화한 것을 두고 각각 문재인 정부 청와대와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이 책임이 있다고 서로 다른 공세를 펴고 있다.

진실 규명이 시작된 만큼 많은 군 관계자들은 2년 전 판단을 스스로 뒤집은 군이 이제는 한발 떨어져 상황을 지켜봐야 할 때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지금 군은 오히려 현 상황에 뛰어들어 특정 편을 드는 모양새를 내비치고 있다.

국방부는 더불어민주당TF가 1일 합참을 방문한 뒤 “2년 전과 특수정보(SI) 판단은 변한 게 없는데 군이 임의로 정보 판단을 바꿨다”는 입장을 내자 “사실과 다르다”며 즉각 반박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정치권 주장에 반응하는 게 적절하냐는 내부 논의가 있었으나 오해를 불러올 소지가 있어 짚어줄 필요가 있었다”고 설명했지만 사실관계를 떠나 이는 분명 지난달 23일 국민의힘TF가 국방부를 방문한 뒤 낸 입장에 군이 침묵한 것과 대조됐다. 군 내부에선 2년 전 입장을 180도 뒤바꿔 안보기관의 권위가 실추된 현 상황에서 군이 스스로 정쟁(政爭)의 대상이 되며 구성원들의 사기를 갉아먹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한 군 관계자는 “군은 사건 당시 핵심 정보인 특수정보에 대해 객관적인 판단만 내리면 된다. 그때나 지금이나 군은 앞에 나서서 비판의 ‘총알받이’를 자처하는 느낌이 든다”고 꼬집었다.

현 상황에선 군이 입을 열수록 안보실 혹은 정치권 등 특정 외부 세력에 군이 휘둘린다는 꼬리표가 붙을 수밖에 없다. 이는 2년 전 사건 당시 군이 얻은 통렬한 교훈이기도 하다. 지금은 군이 침묵할 때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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