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영 스타트업 투자심사역(VC)·작가
얼마 전, 오랜만에 세 자매 데이트를 계획했다. 올림픽공원에서 하는 페스티벌 티켓이 생긴 것을 계기로 근처 호텔을 예약하고 그 김에 놀이동산까지 가기로 결의했다. 페스티벌과 놀이동산이라니. 일상 회복, 더 정확히는 ‘오락’ 회복이 실감 나는 조합이었다. 손꼽아 기다리던 당일, 얼결에 부모님과 동선이 닿았다. “엄마 아빠, 우리랑 놀이동산 안 갈래?” 처음엔 당황스러워하던 두 분을 꾀어내는 데 성공했다. 놀이기구는 안 타도 그만이니 산책하며 분위기만 느끼자고. 구슬아이스크림만 먹어도 충분하다고.
멀리 놀이동산이 눈에 들어오면서부터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엄마 아빠와 마지막으로 온 건 못해도 20년 전. 함께 손을 잡고 걷는 것만으로도 그 시절 추억이 되살아났다. 이후 친구들과 애인과 몇 번이고 다시 왔지만 달랐다. 시간을 거슬러 오른 듯 곳곳이 낯설고 반가웠다. 평균 연령 34세의 세 딸과 올해 환갑인 부모님의 놀이동산이라니. 사위들 없이, 손주들 없이 이 조합은 전체를 통틀어 우리밖에 없을 거라며 웃었다.
동화 속 세계 같았던 환상의 섬을 훤히 꿰는 데까지는 삼십 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커서 만난 놀이동산은 하나의 큰 놀이터였다. 엄마 아빠는 놀이기구는 타지 않고 시종일관 카메라로 딸들을 좇았다. 무서웠다며 울먹이는 딸을 우리는 놀렸지만, 부모님은 초등학생 딸을 어르듯 안아주며 안쓰러워했다. “너희들 어릴 때 이거 많이 탔는데!”
데이트할 때나 가던 테라스가 멋진 호숫가의 펍에서 맥주를 한 잔씩 하고, 편의점에서 주전부리를 사 호텔로 돌아오는 길, 아빠는 꿈속에 있는 것 같다셨다. 사실은 운전해 오는 길, 설레셨다고. 보호자가 아닌 입장에서 오는 놀이동산이 처음이라. “그럼 이제 보호자는 누구지?” 아무래도 가장 젊은, 내 눈엔 여전히 아기지만 서른둘이나 먹은 우리 막내가 이제는 제일 대장이다.
지금까지도 거의 매일, 문득문득 퍼레이드를 보던 두 분의 해맑은 표정이 아른거린다. 책임감으로부터 졸업한 홀가분함과 놀이동산이라는 공간의 특수성이 만나, 난생처음 발견한 두 분의 얼굴. 언니와 동생도 그렇다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눈물이 날 것 같다고. 고작 며칠이 지났는데 벌써 꿈같아 조금은 슬프기까지 하다고. 죽기 전에 제일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게 되면, 이날 두 분의 표정이 가장 먼저 떠오를 것 같다. 우리 부디, 조금이라도 더 오래, 더 많이, 같이 놀자.
김지영 스타트업 투자심사역(VC)·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