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전화통화하는 것을 그대로 방송에 내보낸 것을 두고 러시아가 기밀을 위반했다고 비난했다.
4일(현지시간) 외신들을 종합하면 마크롱 대통령의 유럽연합(EU) 순회 의장직 활동을 다룬 최근 다큐멘터리 방송에서 푸틴 대통령과 통화 녹음한 것이 그대로 방송되는 일이 벌어졌다. ‘대통령, 유럽 그리고 전쟁’ 제하의 이 방송은 프랑스 유명 언론인 기 라가쉐 촬영팀이 취재한 것으로, 지난달 말 방송됐다.
마크롱 대통령의 EU 의장국 임기 활동을 밀착 취재하려는 의도였으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란 대형 이슈 때문에 초점은 자연스럽게 우크라이나 전쟁 막후 외교 활동에 맞춰졌다. 마크롱 대통령은 올해 1월부터 6개월 간 EU 순회 의장직을 맡았다.
특히 마크롱 대통령이 지난 2월20일 푸틴 대통령과 전화 통화하는 것을 그의 보좌진이 듣고 있는 모습이 고스란히 방송됐다.
마크롱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에게 스위스 제네바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만날 것을 제안하면서 이것을 공동성명에 담자고 제안했다. 푸틴 대통령은 “원칙적으로 동의한다”면서도 현재 체육관에 있고 “아이스하키 연습을 시작하기 전 보좌진과 상의하겠다”고 답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통화 후 보좌진들에게 통화가 잘 됐다고 말했지만, 몇 시간 후 계획이 틀어졌다. 양측 대통령실 외교 정책 보좌관들인 에마뉘엘 본과 유리 우샤코프 간 대화에서 러시아 측이 공동성명에 미·러 정상회담을 언급하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다. 본은 다큐멘터리 영상에서 “문제는 푸틴이 거짓말쟁이라는 것”이라며 “더 똑똑해지는 것은 우리에게 달렸다”고 말한다.
외교적 노력은 좌절됐다. 바이든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의 만남은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 그리고 푸틴 대통령은 나흘 뒤 우크라이나 침공을 개시했다.
푸틴 대통령은 지금 우크라이나 정권이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가 아니다”면서 “그들은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고 사람들은 산 채로 불에 탔다. 그것은 대학살이었고 젤렌스키는 그것에 책임이 있는 사람 중 한 명”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동부 돈바스 지역의 친러 분리주의 세력의 말을 들어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마크롱 대통령은 “우리는 분리주의자들의 제안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입장을 보였다.
마크롱 대통령이 전쟁 발발 첫 날인 지난 2월24일 젤렌스키 대통령과 통화하는 모습도 영상을 통해 공개됐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영어로 “당신이 푸틴과 대화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전쟁을 멈추기 위한 노력을 계속 경주할 것을 요청한다.
이에 마크롱 대통령은 “테이블에 앉아 협상할 준비가 돼 있느냐”고 물었고, 젤렌스키 대통령은 “물론이다, 우리는 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이 영상이 방영된 뒤 러시아 외무부는 프랑스가 정상 간 비공개 회담 기밀을 위반했다고 비난했다.
타스통신에 따르면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정상 간 회담은 당연히 기밀 사항이고 비공개로 진행된다”며 “그러나 마크롱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전화 대화 내용이 촬영팀에 녹음된 것이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프랑스의 외교 접근 방식을 드러낸다”며 “이제는 그 누구도 프랑스 측이 기밀을 유지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