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보유액이 4382억8000만 달러로 전월 대비 94억 3000만 달러 감소해 13년 6개월 만에 최대 감소폭을 나타냈다. 5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달러를 정리하고 있다. 뉴시스
통계청은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6%로 외환위기 이후 23년 7개월 만에 최고치를 나타냈다고 어제 밝혔다. 외식비 기름값 등 생활물가가 치솟으면서 가계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금리를 올리면 한국의 3분기 국내총생산이 1년 전보다 2.2% 감소하며 역성장할 것이라고 일본 노무라증권이 경고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공급망 붕괴에 따른 위기가 경제 전반에 확산되고 있다.
지금 우리 경제는 물가가 급등하는 가운데 일자리 부족과 경기 하강이 반복되는 진퇴양난에 처해 있다. 그 여파로 물가상승률에 실업률을 더한 국민고통지수는 1분기 10.6으로 2015년 이후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개인과 기업의 고통이 커지면 소비가 위축되고 실업이 다시 증가하는 악순환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 같은 악순환 고리에서 벗어나기 위한 확실한 정책 수단이 없다는 점이다. 폭등하는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 인상이 불가피하지만 그럴 경우 경기가 더 침체될 수 있다. 당장 한미 금리 역전에 따른 자본유출 우려가 크지만 1800조 원이 넘는 가계부채 때문에 기준금리를 대폭 올리기가 어렵다. 환율 방어에 달러를 사용한 결과 외환보유액이 금융위기 이후 최대 폭으로 줄었지만 어제 원-달러 환율은 13년 만에 처음 1300원을 넘었다.
고물가와 저성장이 겹친 복합위기는 장기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당국은 지금 같은 추세라면 하반기 물가상승률이 7, 8%대에 이르고 경기는 올해보다 내년이 더 부진할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정부는 정책수단을 총동원해 위기 대응에 나서야 한다. 하지만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외환위기에 비견되는 경제 타격을 이겨낼 수 없다. 기업은 원자재 값 상승분을 가격에 전가하는 속도를 줄이고, 가계는 현명한 소비를 통해 고물가 상황을 극복해야 한다. 각 경제 주체의 양보와 인내만이 국가적 고통을 줄일 수 있는 해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