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일이 꼬일 때가 있다. 세계 최고 재즈 피아니스트인 키스 재럿의 1975년 독일 쾰른 오페라 하우스 콘서트 실황 앨범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재즈 피아노 솔로 앨범이다.
당시 17세로 최연소 공연 기획자였던 페라 브란데스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했다. 공연장에 놓인 피아노가 재럿이 요구했던 브랜드는 맞았지만, 콘서트용 피아노가 아닌 연습용이었고 건반과 페달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고장 난 상태인 것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를 발견한 것은 공연 당일 쾰른에 온 재럿이 공연을 몇 시간 앞두고 공연장에 도착했을 때였다. 예민한 성격으로 잘 알려진 재럿은 당연히 연주를 거부했다. 당일엔 비가 퍼붓고 있었고, 새로 피아노를 구해 옮겨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단지 피아노 조율사만이 올 수 있었을 뿐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는 그런 생각을 했다. 만약 재럿이 그날 연주를 거부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는 즉흥연주로 재즈 역사에 남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앨범을 갖지 못했을 것이고, 이는 팬들에게도 커다란 손실이었을 것이다. 그날 그는 상태가 안 좋은 피아노 상태를 고려해 가며 그만의 즉흥연주를 멋지게 펼쳐냈다. 만약 그날 공연이 악보에 있는 것을 그대로 재현해야 하는 전통적인 클래식 연주였다면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코로나를 겪으며 불확실성이 높은 세상을 살아가고 일하게 되었다. 과거처럼 ‘악보’(계획)에 의해서만 ‘연주’(실행)를 하기 힘든 세상을 살아가게 된 것이다. 종종 기업의 팀은 오케스트라에, 리더는 지휘자에 비유되곤 했었다. 하지만, 점차 경영 분야에서도 재즈의 즉흥연주가 주는 통찰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프로 재즈 피아니스트로서 미국 해군대학원 경영학 교수인 프랭크 배럿은 재즈의 즉흥연주 기법이 비즈니스에 주는 통찰을 담아 ‘엉망이어도 괜찮아(Yes to the Mess)’란 책을 냈다. 그에 따르면 재즈의 즉흥연주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위험을 감수하는 것을 특징으로 삼는데, 재즈 연주자들은 예기치 않게 벌어지는 즉흥연주 상황을 보다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기회라고 믿기 때문이다.
프로 재즈 베이스 연주자이면서 노스웨스턴대 경영대학원을 비롯해 세계 각지에서 리더십에 대한 강의를 해오고 있는 재즈 임팩트의 마이클 골드 박사는 즉흥연주(improvisation)를 ‘현재 상황을 지속적으로 개선(improve)하여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시도’라고 정의한다.
예를 들어 회의에서 누군가 아이디어를 냈는데, 그것이 과거에 시도해본 아이디어라고 치자. 어떤 사람은 그런 경우 “그거 이미 해 봤는데 안 된다”라고 말하며 그 자리에서 결론을 내버린다. 재즈의 연주처럼 즉흥적으로 발전 가능성을 살펴보려는 사람은 다르게 반응할 수 있다. “과거에는 비슷한 시도를 해봤는데 잘 안되었지만, 지금 당신이 낸 아이디어를 과거와는 다른 방향에서 발전시킬 수 있을지 한번 논의해 보자”라고 말하며 가능성을 열게 된다.
하루하루 우리에겐 예상치 못한 상황들이 펼쳐진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불확실한 상황을 좋아하지 않는다. 정작 중요한 것은 그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는지와 그 다음 대응이다. 어떤 사람은 그 상황을 단지 불운이라 생각하고, 또 어떤 사람은 그 상황을 무언가 개선시킬 기회라고 생각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게 된다.
“재즈에서 틀린 음이라는 건 없다. 연주하는 그 음이 틀린 게 아니라, 그다음에 오는 음이 그게 옳으냐 그르냐를 결정하는 것이다.” 역시 마일스 데이비스의 말이다.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