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에서 경찰의 과잉진압 논란이 일면서 경찰의 물리력 행사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현장 대응 과정에서 경찰의 형사책임을 감면해주는 ‘경찰관 직무집행법’ 개정법이 시행된지 5개월이 났지만, 일선 경찰들은 여전히 답답한 상황이라고 목소리 냈다.
6일 광주전남이주노동자인권네트워크에 따르면 단체는 지난 4일 외국인 흉기 소지자 과잉진압 논란과 관련해 경찰의 과도한 공권력 행사에 대한 진상을 밝히기 위해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광주사무소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광주 광산경찰서는 지난달 29일 부엌칼을 들고 돌아다니며 불안감을 조성한 혐의로 베트남인 A(24)씨를 입건했다. 경찰은 5차례 경고에도 A씨가 부엌칼을 내려놓지 않자, 테이저건을 쏴 제압한 것으로 전해졌다.
단체는 “경찰 법 집행 정당성 확보를 위한 기준 규칙에 따르더라도 이번 경우는 공권력 과잉 행사를 넘어 국가 폭력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이번 사안은 위험한 사람에 대한 범죄 억지력이 폭력으로 변질된 상황을 국가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방패막이 삼은 행태다”고 비판했다.
이를 두고 현장 경찰관들 사이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 인권위 진정 등이 이어지면 결국 경찰의 현장 대응력이 소극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는 취지다.
서울에서 근무하는 경찰 C씨는 “경찰이 베트남어로 경고하지 않았다거나 테이저건을 쐈다는 이유만으로 비판하는 사람이 많은데, 현실과 동떨어진 비판”이라면서 “상대방이 외국인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5차례 경고를 했음에도 칼을 내려놓지 않았다면 마약 사용 등 특수한 상황이라고 인지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상대가 흉기를 들고 위협하고 있는 상황에서 테이저건을 쐈다면 정당하다고 볼 수 있는데, 인권위 진정을 비롯해 추후 추가적인 소송에 휘말릴 수 있다”고 부연했다.
이어 “규칙대로 일해도 규칙이 보호해 주지 않는 상황에 시달리고, 규칙대로 하지 않으면 동네 아저씨라고 조롱 받는 게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경찰은 2019년 11월부터 시행된 ‘경찰 물리력 행사의 기준과 방법에 관한 규칙’에 따라 현장에서 대응하도록 돼 있다.
규칙을 보면 상대방 행위의 위해성 수준에 따라 ▲순응 ▲소극 저항(비협조적) ▲적극 저항(공무집행 방해) ▲폭력적 공격(완력 사용해 체포 회피) ▲치명적 공격(흉기 등 이용해 위력 행사)의 순서로 분류하고 있다. 이에 경찰이 각각 ▲수갑 ▲경찰봉 ▲분사기 ▲전기 충격기 ▲권총을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적극적인 법집행을 지원하기 위해 지난 2월부터는 개정 경찰관 직무집행법이 시행됐다. 현장 경찰관은 긴박한 상황에서 직무 수행 중 타인에게 피해를 줘도 고의·중과실이 없고 수행이 불가피했다면 정상을 참작해 형사책임을 감경 혹은 면제받을 수 있게 됐다.
최근 전남 여수에서는 20대 남성이 한 파출소 문 틈으로 화살총을 쏘고 도주하는 일이 벌어졌다. 남성은 약 12시간 뒤 파출소와 5㎞ 가량 떨어진 주거지에서 체포됐지만, 사건 당시 근무하던 경찰들은 책상 밑으로 몸을 숨기는 등 소극적으로 대처해 비판이 일기도 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적법한 절차에 의한 법 집행에 따른 결과들은 정부, 특히 경찰 조직이 책임을 져줘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공무집행을 제대로 할 수 없다”면서 “지금은 제대로 일을 해도 죄가 되고, 자신의 혐의 없음을 자신이 입증해야 한다. 적법한 절차에 따라 조치했을 때 문제가 생긴다면 ‘잘했다’고 칭찬하는 간부는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러다 보니 테이저건이나 총기 등 적절한 대처가 오히려 금기시되는 경찰 문화가 자리 잡게 된 것”이라면서 “경찰이 합법적으로 정당한 적법 절차에 의해 집행했다면 그로 인한 사건 사고는 조직이 책임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누가 열정과 사명감을 갖고 일 하겠나”라고 지적했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