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권 적폐 바로잡고 연금·노동개혁 이루려면 유일한 동력이 국민 과반수 지지인데 尹대통령, 거친 발언과 해이한 주변인 관리로 失點 조금이라도 오만해지면 지지 잃고 힘도 잃게 돼
이기홍 대기자
윤석열 정권에 대한 좌파진영의 적개심은 극에 달한 수준이다.
반대, 비판의 수준을 넘는다. 하나에서 열까지 다 물고 늘어지며 극한의 혐오와 증오를 퍼붓는다. 아직은 언어적 차원이지만 머잖아 조직력이 총동원돼 정권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물리적 공세에 나설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통합과 협치가 가능할까?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 때도 그랬는데 더 심해진 것이다. 총칼만 들지 않았을 뿐 거의 내전 수준의 이념적·정치적 적개심이다.
이런 상황에서 출범한 윤 정권은 역대 어느 정부보다도 높은 난도의 소명을 어깨에 이고 있다. 경제회복, 안보강화 같은 일반적 목표만 잘하면 됐던 다른 보수 정권과는 다르다.
그 소명은 대한민국의 정상화, 즉 문재인 정권 5년의 비리·부정·왜곡을 바로잡아 정의를 회복하고, 문 정권이 방기해 악화시킨 노동 연금 교육 개혁을 이뤄내는 일이다. 한결같이 좌파 진영이 극렬 저항할 사안들이다.
윤 정권이 이 소임을 이뤄내기 위한 유일한 동력은 국민 과반수의 지지뿐이다. 레닌·스탈린이 휘둘렀던 공포정치·숙청 같은 물리력도, 문재인의 180석 같은 다수의석도 없는 윤 대통령에게 국민 지지는 소임을 이뤄낼 유일한 수단이다.
사실 지난 두 달간 시빗거리가 된 윤 대통령의 언행 가운데는 타깃이 윤석열이 아니었다면 그렇게까지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며 시비를 삼을 사안이 아니었던 게 상당수였다.
공약대로 대통령의 특권·기득권을 없애는 차원에서 기존의 기구·제도를 폐지하는 바람에 과도기적 공백 상태가 빚어져 시행착오, 서투른 대응들이 발생했는데 이를 마치 본질적·심각한 병폐인 것처럼 물고 늘어진 경우가 많았다.
한 예로 “대통령 처음 해봐서…” 발언은 제2부속실을 없애고 새로운 보좌시스템을 모색하는 공백상태에서 어떤 게 모범답안인지 잘 모르겠다는 심정을 담은 서투른 유머로 간주해도 될 텐데, 이를 무책임의 극치로 몰아붙이는 게 우리 정치·언론환경이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결코 간과하거나 너그럽게 넘겨서는 안 되는 문제는 윤 대통령이 그동안 쏟아낸 말들 일부에서 묻어나는 오만함의 징후다.
“전 정권 장관 중 훌륭한 사람 봤느냐”고 하는 대신 “능력 우선으로 찾았는데 우리 사회 사람 찾기 어렵더라. 어느 부분에 더 가치를 두고 보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는데 많이 부족할 수 있다. 국민들이 한번 기회를 주시면 자기 부족한 점을 의식해서라도 더 열심히 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면 반응이 지금 같았을까.
“지지율에 신경 안 쓴다”는 발언도 당장은 욕을 먹어도 나라에 꼭 필요한 개혁을 할 때 고뇌와 충심을 강조하는 차원에서 해야 하는 발언인데, 엉뚱한 데서 해버리니 ‘이제 당분간 선거도 없으니 누가 뭐라든 신경 쓰지 않겠다’는 오만함으로 비친다. 말의 내용 자체가 아니라 그 바탕에 깔린 오만한 마음이 국민을 실망시키는 것이다.
지난 두 달간 윤 정부는 옳은 방향으로 나라의 궤도를 틀어 왔다. 한미 동맹·원전 복구, 규제 완화, 공기업 개혁…. 그런데도 국정의 본질이나 방향과는 무관한 몇 마디 말과 주변인들의 처신 때문에 많은 지지층을 잃었다.
문재인 정권은 국민 다수의 상식과 여론을 무시하고도 그럭저럭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보수 정권은 다르다. 문재인 정권이 아무리 국정을 망가뜨려도 변함없이 뭉쳐 있던 좌파 지지층 40%와 달리 보수 지지율은 금방 녹아 사라진다. 진보 중도 보수를 40 대 20 대 40으로 가정할 때, 왼쪽 40%는 콘크리트인 반면 오른쪽 40% 중 절반가량은 아이스크림처럼 사라질 수 있다. 대다수 보수는 조직도, 맹목적 지지도 없기 때문이다.
어제 한 독자가 좌파 진영에 공격 빌미를 계속 제공하는 윤 대통령과 주변인들이 너무 답답하고 불안하다며 필자에게 보내온 문구를 소개한다.
“우리가 타인을 평가하는 수단은 그 사람의 언어와 행동이다.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판단도 마찬가지다. 지도자가 국민 앞에서 진심으로 겸손하면 언행에 그게 묻어난다. 국민은 그 향기에 감동하고 모여들고 존경을 보내게 마련이다.”
이기홍 대기자 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