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의 시집 들고 등불 앞에서 읽었소. 시 다 읽자 가물대는 등불, 아직은 어두운 새벽.
눈이 아파 등불 끄고 어둠 속에 앉았는데, 역풍에 인 파도가 뱃전 때리는 소리.
(把君詩卷燈前讀, 詩盡燈殘天未明. 眼痛滅燈猶闇坐, 逆風吹浪打船聲.)
―‘배 안에서 원진(元유)의 시를 읽다(주중독원구시·舟中讀元九詩)’ 백거이(白居易·772∼846)
간관(諫官)도 아닌 터에 주제넘게 상소했다는 죄명으로 시인은 장안에서 강주사마(江州司馬)로 좌천되었다. 남하하는 배 안에서 등잔 불빛이 시들어 가도록 시인이 탐독한 책은 원진의 시집. 시와 문장을 왜 쓰며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해 서로 지음(知音)을 자처할 정도로 의기투합했던 사이이니 그가 원진의 시집을 잡은 건 하등 이상할 게 없다. 눈의 통증도 잊고 새벽이 가깝도록 내처 읽었고, 등불을 끄고도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한다. 원진의 시편들을 재음미라도 하는지, 아니면 좌천 길에 오른 자기 처지에 대한 회한 때문인지 뱃전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가만히 어둠을 지키고 있다.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