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
서울 남산 아랫자락에 있는 밀레니엄힐튼이 올해까지만 영업을 하고 운영을 중단한다. 언론에도 여러 번 보도가 돼서 이미 알고 있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호텔에 갈 일이 있으면 직원분들에게 그새 달라진 것이 없는지 묻곤 한다. 호텔도 슬슬 이별을 준비하는 것처럼 보인다. 1983년 호텔이 문을 열 당시의 사진부터 도어 데스크 직원들이 입었던 유니폼, 객실에서 사용하던 아이스 버킷과 재떨이까지 로비에서 전시 형태로 소개를 하는데 한 점 한 점이 다 고풍스럽고 아름답다. 호텔 문화를 만들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하던 저 때가 이곳에서는 벨 에포크(프랑스어로 ‘아름다운 시절’이란 뜻. 19세기 말부터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전까지 전례 없는 풍요와 평화를 누렸던 황금기) 같은 시기가 아니었을까 싶었다. 이 시절이 통째로 사라진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워 뒤편에 있는 후원으로 나가 느린 산책을 했다. 연못에는 비단잉어가 있고, 아름드리나무와 풀꽃, 청동 가로등과 석물이 어느 것 하나 이질적인 느낌 없이 온전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완전히 뿌리를 내린 풍경이랄까. 그곳을 거닐면서 호텔 역시 공공재라는 생각을 했다. 시장이나 도서관처럼 자주 갈 수는 없지만 한 번씩 기약하고 찾아가 잠시나마 행복한 시간을 맛보는.
발길은 자연스레 호텔 옆에 친구처럼 붙어 있는 남대문교회로 이어졌다. 울퉁불퉁한 표면의 큼지막한 돌을 반듯하게 쌓아 올린 석조 건축물. 하늘과 교신하려는 듯 높고 뾰족한 첨탑이 특징인 고딕 양식으로 지었으면서도 날카로운 기운 없이 온화하고 담백했다. 적조 양식이 주는 수공예의 정성과 고단함, 효율을 생각했다면 담아내지 못했을 디테일도 어떤 자장(磁場)처럼 성스럽고 평화로운 기운을 만들어냈다.
내부 역시 인상적이었다. 오래된 그림과 단순한 디자인의 창문. 그 너머로 보이는 초록 나무와 고층 빌딩들. 계단의 핸드레일은 지금껏 그 모습이 선연하다. 아래쪽에 원통형의 대리석을 놓고 그 위쪽으로 목재를 연결했는데 나무 아래쪽을 근사하게 파고 조각해서 그 자체가 하나의 생활 예술이었다. 이곳을 설계한 이는 건축가 박동진. 일제강점기를 지나며 한국의 전통 건축, 일본의 목조 건축이 갖기 힘든 ‘강인함’을 갖기 위해 고심한 결과가 고딕 양식의 석조 건축으로, 고려대 본관과 도서관, 중앙고등학교의 본관 역시 그의 작품이다.
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