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엉이 보셨다고 연락 주신 분이시죠?”
3일 오후 서울 강남구의 한 아파트 단지. 서울시야생동물센터 하민종 수의사가 경비실을 지키던 직원에게 물었다. 그는 바로 하 수의사를 지하 주차장 안으로 안내했다. 주차장 천장에서 투명한 창문을 향해 막무가내로 몸을 날리는 비둘기만한 크기의 새가 보였다. 천연기념물 제324호 솔부엉이였다.
아파트 관리직원들이 주차장 바깥에서 창문을 두드리면서 솔부엉이를 아래 방향으로 몰았다. 그러자 기다리던 하 수의사가 재빠르게 포획용 채를 날려서 솔부엉이를 낚아챘다. 하 수의사는 “새들은 공사장이나 지하주차장이 뭔지도 모르고 들어가서 빠져 나오지 못한다”며 “유리창으로 나가려다가 머리를 세게 부딪쳐 안구가 파열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다행히 이날 포획한 부엉이는 큰 외상이 없어 보였다.
● 야생동물로 북적이는 구조센터
센터는 서울시가 야생동물을 적극 구조하고 관리하기 위해 2017년 서울대 수의과학대학과 수탁운영 협약을 체결하면서 문을 열었다. 야생동물은 산과 들 또는 강 등 자연에서 서식하거나 자생하는 동물을 뜻한다. 소와 닭처럼 사람이 특정한 목적을 갖고 키우는 가축이나 개, 고양이 등 반려동물은 센터에서 치료하지 않는다.
3일 찾아간 센터는 입원실 역할을 하는 계류장마다 야생동물로 북적였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비둘기, 참새, 우리나라 텃새인 흰뺨검둥오리와 천연기념물인 황조롱이 등 조류가 가장 많았다. 포유류로는 족제비, 너구리, 고라니 등이 눈에 띄었다. 계류장 세 곳의 철제우리와 플라스틱상자가 동물 130마리로 가득 차 있었다. 피부가 벗겨지고, 날개가 부러지거나, 안구가 손상되는 등 부상 종류와 정도 역시 천차만별이었다.
“대부분은 사람의 잘못으로 여기 옵니다. 인간이 만든 구조물 때문에 다치거나, 누군가 멋모르고 서식지에서 데리고 나와서 미아가 되는 경우죠.” 하 수의사가 설명했다.
계류장 옆에는 간단한 처치를 하는 시술실, 센터 윗층에는 더 큰 규모의 수술실이 있었다. 이날 기자가 센터를 방문한 시각에도 서울 마포구의 한 공사장에서 기름통에 빠져 화상과 외상을 입은 큰부리까마귀가 이송돼 치료를 받았다. 의료진은 시술실에서 항생제와 진통소염제를 투여하고 외상 부위를 소독했다. 큰부리까마귀는 고통스러운지 재활관리사의 손을 부리로 물며 몸부림쳤다.
● 서울에 사는 육상 야생동물만 304종
서울시야생생물센터는 지난해 동물 1491마리를 구조하거나 치료했다. 개소 첫 해인 2017년 293마리에서 크게 늘어난 수치다.
구조되는 야생동물이 늘었다는 것은 그만큼 야생동물의 수가 늘었다는 뜻이다. 실제 서울에는 950만 명에 이르는 사람 뿐 아니라 야생동물도 많이 살고 있다. 지난해 기준 서울에서 사는 육상 야생동물(곤충 제외)은 포유류 31종, 조류 235종, 파충류 22종 등 304종에 이른다. 이 중 멸종위기종과 천연기념물도 각각 36종과 10종에 달한다.
최근엔 희귀한 야생동물이 발견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천연기념물 제217호이자 멸종위기 야생생물 Ⅰ급인 산양이 서울 인왕산, 안산 등지에서 서식하는 것이 확인됐다. 올해 1월 서울 송파구와 강남구를 흐르는 탄천과 지난해 12월 여의도 샛강공원에서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Ⅰ급인 수달이 발견됐다. 서울 청계천에는 ‘선비의 상징’이던 백로가, 서울 여의도와 강남구 빌딩숲에는 안주애기박쥐라 불리는 작은 박쥐가 산다. 이밖에 너구리, 족제비도 자주 발견되는 야생동물이다.
지난해 정부가 집계한 전국 야생동물센터 구조 개체 1만7545마리 가운데 서울과 5대 광역시에서 구조된 개체만 5702마리로 전체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물론 사람이 많이 살다 보니 신고 건수가 많았을 수도 있지만 야생동물 수가 적었다면 이 정도의 신고 건수가 나오기 어려웠을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 갈 길 먼 도시 야생동물 보호
야생동물이 늘어나는 것은 그만큼 도시의 자연환경이 살아나고 있다는 방증이다. 최근 들어 대도시 시민들의 녹지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녹지를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선 건강한 동식물 생태계가 꼭 필요하다. 이 때문에 많은 지자체가 야생동물 생태에 관심을 가지고 이들을 관리 보존하는 다양한 정책을 펴고 있다.하지만 도시 내 주거지 개발 등으로 야생동물은 꾸준히 서식지 위협을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녹지와 공원, 습지, 생태통로를 더 늘리는 것과 함께 야생동물의 습성에 맞는 서식지를 조성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새들에게 먹이가 되는 식물을 심거나 은신처가 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등 야생동물이 살기 용이한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도시 야생동물의 공존방안을 연구해온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 우동걸 선임연구원의 말이다.
세계자연보전연맹 자료에 따르면 한반도 면적은 전 세계 육지의 0.15%에 불과하다. 하지만 살고 있는 동식물 수는 세계 전체의 2.5%에 이른다. 면적 대비 상당히 많은 동식물이 살고 있다는 뜻이다.
우 연구원은 “국내에서 토지를 개발할 때 야생동물 영향에 대한 환경영향평가도 보다 철저히 실시해야 한다”며 “본래 야생의 공간이었던 곳을 인간이 침범하는 것인 만큼 사람들이 야생동물에게 그들의 공간을 돌려주고 갚는다는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 사고저감 위한 시설도 늘려야
도시 개발사업을 하거나 건물을 신축할 때도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인간이 만든 시설과 구조물로 인해 매년 많은 야생동물이 사망한다. 일명 ‘로드킬’로 불리는 동물 찻길 사고 신고건은 2015~2019년 5년간 7만1999건에 이른다. 미신고건을 감안하면 매년 엄청난 수의 야생동물이 교통사고를 당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야생동물들은 사고를 당하면 목숨을 부지하더라도 큰 부상을 입게 된다. 하 수의사는 “고라니가 교통사고를 당할 때 치이는 위치가 딱 척추 정도”라며 “살아남더라도 척추손상으로 하반신 마비가 되어 사실상 생존이 불가능해지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하늘 위 로드킬’이라 불리는 조류 충돌은 세기가 어려운 정도다. 정부는 투명한 유리창에 부딪혀 폐사하는 야생조류가 연간 800만 마리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런 안타까운 죽음을 막으려면 각종 시설물을 만들 때 사고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적용해야 한다. 도로가에 야생동물의 월담을 막는 울타리를 설치하거나, 야간에도 볼 수 있는 발광다이오드(LED) 야생동물 표지판을 설치하는 게 대표적이다.
또 새들의 로드킬을 막기 위해 건물 외벽 및 방음벽에 불투명창을 설치하거나 투명창을 설치하더라도 새들이 장애물로 인식할 수 있도록 격자무늬 등 가로 10㎝, 세로 5㎝ 이하의 무늬를 넣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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