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선엽 장군 딸이 정치적인 이유로 눈치를 보는 사람들 때문에 아버지의 유언을 지키지 못했다고 한탄했다.
백 장군 장녀 백남희씨는 8일 경북 칠곡군 가산면 다부동전적기념관에서 열린 백선엽 2주기 추모 행사에서 “정치적인 이유로 눈치를 보는 주위 사람들의 강력한 반대로 인해 아버님이 남기신 마지막 부탁을 들어드리지 못한 것이 아직도 가슴이 아프고, 후회스럽다”며 “다른 무엇보다도 아버님께 죄송하기 그지없다”고 밝혔다.
백씨는 “아버님이 병실에서 유언으로 남기신 말씀이 기억에 생생하다”며 “아버님은 ‘내가 대전 현충원에 묻히기 전에 동작동 국군 묘지에 가서 전우들이 묻힌 곳을 꼭 둘러보고 아울러 평택 캠프 험프리(Camp Humphrey)를 찾아가 작별 인사를 하고 한국과 미국의 동맹을 거듭 다짐할 기회를 달라’고 부탁했다”고 유언 내용을 소개했다.
앞서 백씨는 지난 7일 경북 칠곡군 김재욱 군수를 만난 자리에서도 “미군 부대에서는 아버지를 맞을 준비를 했지만, 일부의 반대로 마지막 소원을 이뤄 줄 수 없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백 장군은 1920년 평남 강서 출생으로 1941년 만주군관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 괴뢰국인 만주군에서 소위로 임관했다.
백 장군은 일제 간도특설대에서 장교로 복무했다. 간도특설대는 만주국 북부에 있던 사회주의 계열 민족 해방세력인 팔로군, 동북항일연군, 조선의용대와 만주 북서부에 잔존해 있던 대한독립군단을 토벌하기 위한 특수 목적을 띈 독립군 토벌 부대였다. 이 때문에 백 장군은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 명단에 올랐고 현충원 안장 여부도 논란이 됐다.
그는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국군에 입대해 국군 제5연대장과 육군본부 정보국장을 거쳐 1950년 4월에 개성을 관할로 하는 1사단장으로 부임해 1951년까지 사단을 지휘했다.
백 장관은 6·25전쟁 당시 낙동강 다부동 전투 등에서 전공을 세웠다. 그는 1951년 중공군 춘계 공세를 막아 동부 전선 붕괴를 차단했다. 지리산 일대 빨치산 토벌작전에도 나섰다.
백 장군은 1952년 7월 육군참모총장에 임명됐고 1953년 1월 전공을 인정받아 우리 군 최초 4성 장군이 됐다. 정전 회담 때는 한국군 대표로 참가했다. 백 장군은 1959년 합참의장을 지낸 뒤 1960년 5월31일 예편했다.
[서울=뉴시스]